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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11. 2022

밥상까지 다 차려서 떠먹여 주세요

저는 위선자입니다 ㅠㅠ 


올해 초, 귀국 이사를 하며 많은 걸 샀어요. 이사 가는 곳이 지방이라 널찍널찍한 데다 지하철도 없어서 자동차도 사야 했죠. 기후변화니 환경이니 실컷 떠들었으니 머릿속으론 전기차를 사야지! 해놓고, 막상 알아보니 전기차는 출고까지 대기가 길 뿐더러 집 주변에 충전 인프라도 충분치 않단 걸 알게 됐습니다. 추운 겨울날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충전까지 신경 쓸 자신이 없어서, 결국 하이브리드를 선택하고야 말았죠. 


여름이 되자, 홍콩 뺨치는 더위와 습도 때문에 냉방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도 머릿속으론 냉방 수요를 줄여야 하는데,라고 되뇌면서도 아기 핑계를 대며 에어컨 리모컨에 손을 뻗었죠(땀띠가 나긴 했다고요). 냉풍기와 선풍기도 구매하기는 했지만, 한 번 켠 에어컨은 점점 더 자주 틀게 되더군요.  


(표리부동의 아이콘..) 


물론 나름대로 신경을 쓰긴 했습니다. 새로 구매하는 가전제품은 효율을 따져서 샀고, 귀찮아도 분리배출을 꼼꼼하게 하고, 배송을 시킬 때는 최대한 한 번에 모아서 시켜서 택배차가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지 않도록 했거든요. 하지만 그래 봤자, 저는 아직도 차에 주유를 하고 툭하면 에어컨을 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해요

그런데,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약간은 변명 맞음) 우리네 라이프스타일이 그렇게 생겨먹은 탓도 있습니다. 네모나게 생긴 틀 안에서 별 모양으로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별 모양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네모 틀 말고도 불가사리 모양 틀이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어요? 


사실 현대 사회에서 '화석연료는 나쁜 거야!'라고 단정 짓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화석연료 산업은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이 침투해 있어서, 오염처럼 나쁜 것뿐만 아니라 '좋은 돈'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석유 산업 의존도가 큰 미국의 오일 타운들은 수억 달러의 세금이 석유나 가스 산업에서 나옵니다. 이 정도면 한 카운티(county, 도시보다 크고 주보다 작은 행정 단위) 세금의 20-30%를 차지한다고 해요. 그 세금을 어디에 쓸까요? 공원 같은 공공시설 조성과 유지에도 쓰고, 병원에도 쓰이고, 지역 학생들의 교육 지원비로도 쓰이지요. 석유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고등학생 멘토를 해주기도 하고요. 만일 내 가족, 내 아이가 이런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하면, 화석연료는 기후변화의 주범이니 당장 다 없어져야 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이 시스템을 유지해선 안됩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폭염에, 홍수에, 산불에, 가뭄에..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점점 잦아지고 있어요. 온실가스 배출을 극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변화라는 건 말이 쉽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지요. 원인을 뻔히 알면서도 화석연료 산업을 당장 갈아엎지 못하는 것처럼요.


뭔가 변화가 있으려면 두 가지 중 하나인 듯합니다: 


- 억지로 한다

- 떠먹여 준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을 정해주고, 누진세를 도입하고, 연비 효율을 높게 설정하는 등 억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규제는 억지로 시키는 것이고요. 다른 한 편으로 전기차 세제 혜택을 주고, 청정에너지 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건 떠먹여 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살살 꼬시는 것이겠죠.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환경 문제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기후 우울증*'이라는 것도 있다지요) 당장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난감하기도 하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들로 가득 찬 일상이 되었으면 좋을 텐데요. 

*기후 우울: 지금까지 기후 대응에 실패한 원인을 이유로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끼거나, 극심한 기후변화에 대해 불안해하고 상실, 분노, 슬픔을 느끼는 증상


예를 들어 저는 닭이 사육되는 처참한 환경을 인터넷에서 보고는 동물복지 달걀만 구매하기로 맘을 먹었는데요, 쇼핑을 할 때 동물복지란을 구매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일반 달걀 바로 옆에 있으니까요. 물티슈도 생분해 물티슈가 시중에 여럿 나와 있고, 아기 기저귀도 친환경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으니 그냥 그걸 클릭합니다. 밥상을 차려 떠 먹여주면 입만 오물거리면 되거든요. 


기후변화의 주범 중 하나가 육류 및 유제품 소비라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육류 소비를 줄이려면 식물 베이스의 고기도 지금보다 많아지고, 더 맛있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매하는 환경 자체가 바뀌어야 한단 거죠.  



시스템이 바뀌면 새로운 기회도 

기후, 환경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이 힘들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미국 회사는 코딱지만 한 스타트업 기업인데, 스스로 '니치 플레이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니치 마켓을 잡아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에서는 전력 회사에서 소비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되돌려주는 리베이트 제도라는 게 있는데, 이게 주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고 전국적으로는 수만 종류에 달합니다. 이를 통합적으로 데이터베이스 화해서 상품으로 팔고 있는 게 제가 일하는 회사의 아이디어죠.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할 때 에너지 효율적인 상품에 따르는 인센티브를 알 수 있게 해 주고, 이를 통해 소비자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셈인데요. 이런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기업도 소비자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거죠. 소비자가 알아서 이런 정보를 찾으려면 세상 귀찮기 때문에 좀 알아보다 말 가능성이 크지만, 알아서 떠 먹여 주면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방안이 됩니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밥상을 차리기 위해, 떠먹여 주기 위해 많은 시장들이 새로 생겨나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입만 벌려도 되게끔 말이죠. 


그리고 이런 시장을 이끌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것도 당연합니다. 특히 화석연료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려면 아까 사례를 든 '좋은 돈'의 출처 역시 끊겨 버리기 때문에, 이를 메꾸어 줄 만한 다른 청정 산업과 지원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애꿎은 희생자가 너무 많아질 겁니다. 


 현 정부들이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면서도 일관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죠. 러-우크라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위기에 봉착한 유럽은 급한 대로 석탄과 원자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미국도 얼마 전 대법원에서 환경보호국(EPA)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는 판례가 나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EPA는 환경청인 만큼 '오염 물질'을 규제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자체로 공기 질에 해롭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이산화탄소를 오염 물질로 분류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 대책을 내놓고 있었죠. 이번 대법원 판결 후에도 여전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EPA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며, 때로는 역행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떠먹여 주면 잘 먹을 수 있는데...

작년 말에 화제가 되었던 <돈룩업(Don't Look Up)>이라는 영화는 소행성 충돌이라는 직접적이고 임박한 재앙을 두고도 결집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을 그립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소행성 충돌처럼 단기간에 재앙을 가져오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작년보다 더 덥네'하고 말지만, 이미 기후변화에 직접적으로 생계에 타격을 입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지구 곳곳에 많이 있거든요. 지구의 기온이 하루아침에 오른 것이 아닌 것처럼, 지구변화가 가져오는 재앙은 아주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거예요. 


정책은 정책대로, 산업은 산업대로,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기후 위기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면, '나 정말 잘 먹을 수 있으니 밥상을 차려서 떠 먹여 달라고요!' 하면서 떼쓸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죠? 



*표지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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