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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06. 2022

이메일 다이어트 D+1

클릭.

클릭.


“홍콩 중고거래 사이트” 업데이트 메일

- 이제 홍콩 떠난 지 반년인데.. 삭제.


“뉴저지 청바지 아울렛” 광고 메일

- 뉴저지는 떠난 지 5년 되어 갑니다.. 삭제.


“캘리포니아 멘로팍 도서관” 아기랑 엄마랑 스토리타임 공지 메일

- 그때 같이 갔었던 아이가 올해 열 살입니다만.. 삭제.


메일함을 더더 깊숙이 파보니 급기야 이런 것도 나왔습니다.


“국내 가발 업체” 광고 메일

- 콘로우도 하고, 코도 뚫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가끔 이용하던 긴 머리 가발 온라인샵. 삭제. 삭제 삭제!! 


와, 뭔 놈의 이메일이 이리도 많다냐. 저는 현재, 이메일함을 정리 중입니다.



이메일을 하나라도 덜 보내는 것이 환경 보호?

원래는, 이메일을 조금이라도 덜 주고받는 것이 기후변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메일함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손바닥 안 화면에서 이메일을 쓰고 보내는 것이 대체 온실가스와 무슨 상관이 있냐 싶지만, 사실 온라인상 활동도 모두 서버가 구동되고 전력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특히 데이터 센터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와 물을 소비하죠. 그래서 유튜브를 재생하는 것처럼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탄소발자국이 남지요.


영국에서 시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끝마칠 때 “Thank you”라는 짧은 답장을 쓰지 않기만 해도 연간 16,433톤의 온실가스가 절약된다고 해요. 하루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메일은 무려 2465억 통이나 된다고 하는데요(2019년 기준),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 986,000톤이 배출됩니다. 계산해 보면 이메일 한 통당 4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셈이지요.


4그램이라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쉬운 실천 방법이 아닐까 싶어 저의 이메일 습관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자, 그럼 어떤 이메일을 줄여야 할까요?  


생각해 보면, 저는 이제 개인적으로는 이메일을 거의 주고받지 않아요. 대부분 카톡 등 메신저 앱으로 소통이 해결되기 때문이지요. 중요하다 싶은 이메일은 업무 이메일이 다인데, 그 정도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구 기온에 0.01도라도 영향을 미칠 만큼 대단한 양이 아닌 것 같았어요.


제 메일함을 꽉꽉 채운 건, 업무 이메일도, 아이 학교 공고 메일도 아닌, 다름 아닌 광고 메일이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메일함을 분류해 놓았기 때문에 매번 알림이 오지 않아 오히려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한번 열어보니 허허, 거참 가관입니다.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는 이것저것 새로 구독을 해 놓고, 그 전의 광고 메일 수신은 취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번씩 쓰윽 살펴볼 만큼 흥미가 있기 때문도 아니에요. 단지 '귀찮아서' 취소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그 이메일을 저만 받나요? 광고 메일이기 때문에 형형색색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 용량은 훨씬 더 큰데, 그 이메일이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에게 동시 전송됩니다. 그중에 대다수는 아마 저처럼 메일함에 쌓아만 놓고 열어보지도 않는 사람들일 거예요. (실제로 광고 이메일의 75퍼센트는 한 번도 열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광고 메일함에 쌓여 있는 2만 통의 이메일을 앞에 놓고, 하나씩 삭제하고 구독 취소하던 저는 갑자기 슬금슬금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메일 좀 삭제한다고 정말로 기후변화 완화에 도움이 될까?


괜한 헛짓거리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실제로 제가 앞서 언급한 저 연구도 사실 논란의 여지가 좀 있었습니다. 계산 방식이나 결과가 좀 뻥튀기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메일을 한 통 덜 쓴다고 해도 그동안 랩탑을 켜 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경우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실제로 이메일 하나 덜 보내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은 육류를 먹지 않고, 비행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메일을 100통 안 보내도 이산화탄소 다이어트를 400그램 하는 것인데(반사회성이 100만큼 증가했습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비행하는 개인의 탄소 발자국은 이산화탄소 30킬로그램이나 되거든요.


하지만 수신하고도 알아채지 못한 채 이메일함에 쌓이기만 하는 광고성 이메일을 구독 취소하는 건 분명 이보다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구독하는 이메일 중 약 17통은 원하지 않는 구독이라고 해요.

위 그림처럼 수많은 구독 이메일 중 원치 않는 17통만 구독 취소를 해도, 1년이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 비닐봉지 83개를 덜 사용하기

- 블랙커피 39잔 덜 마시기

- 자동차 주행 3km 덜 하기


몇 분의 클릭 클릭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치곤 괜찮죠?



이메일 다이어트보다 중요한 건..

가만 보면 카톡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말을 끊는 스타일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용건만 말하면 굳이 답을 안 하기도 하는가 하면, 끝까지 작은 이모티콘 하나라도 남기는 사람도 있죠. 마찬가지로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Thank you”라는 짧은 이메일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도 사실 기후변화랑만 연결되어 생각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 생각에 보내야 할 것 같으면 보내고, 꼭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안 보내는 게 맞는 거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되돌아보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환경과 기후변화를 떠나더라도, 우리가 너무 많은 이메일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열어 보지도 않을 광고성 이메일을 클릭 한 번으로 구독하고, 다시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지요. (그리고 온라인 세상은 내가 꼭 원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그런 이메일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배제되어 있는 삶의 방식 같아요. 그런 이메일을 제작하고 발송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갈 텐데, 그 가치가 내 이메일함 안에서는 공중분해되어 버리니까요.


어떤 이메일은 광고성이라도 손꼽아 기다리는 유용한 것일 때도 있고, “네, 고맙습니다.”라는 한 줄의 이메일도 다정한 위로가 될 때가 있죠. 다이어트라고 해서 무조건 굶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큰 목표를 잊으면 안 되듯, 이메일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메일 속 인연이나 구독을 당연시하지 않고, 나아가 지구의 환경과 기후를 소중히 여기는 그 태도가 가장 중요한 거죠.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한 대목으로 끝을 맺으려 합니다. 모두들 해피 다이어트!


“함께 떠나본 일은 잘 없었던 것 같아.”
“응, 바보 같지만 난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전혀 진취적이지 않지.”
한아가 자조적으로 대답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 안 해. 한 번도 너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 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
한아는 경민의 말에 살짝 기분이 풀렸다.
“그거 알아?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이랑 하지 않난 사람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크게는 일곱 배까지 차이 나는 거?”
경민이 웃음을 삼키려 애를 썼다. 저런 점이 정말 참을 수 없이 귀엽다니까. 오늘따라 예쁘다는 둥의 흔한 칭찬을 했다면 저렇게 기뻐했을까.

-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p. 81-82

참고 자료

https://www.bbc.com/news/technology-55002423.amp

https://leavemealone.app/save-the-planet/#cit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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