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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15. 2022

걱정을 하려면 제대로 하자

폭우와 물난리, 그리고 기후 위기

올해 폭우가 심상치 않다.

이미지: 한국일보

서울 강남을 물에 잠기게 한 비구름은 우리가 사는 중부 지방으로 옮겨와, 며칠 전에는 옆 단지 지하주차장이 침수될 만큼 쏟아부었다.


한국은 폭우인데, 미국은 가뭄이 한창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가물지 않은 해가 없다지만, 올해는 일부 지역에서 세차 금지령이 내려질 만큼 심각하다. 네바다 주에서는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며 연고 없는 시체가 말라붙은 강바닥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범죄물 마니아라 이런 뉴스에 귀가 쫑긋)


유럽도 가뭄에 폭염이다. 영국은 역사상 최초로 수은주가 40도를 찍었다고 한다. 한국이야 원래 더우니 그렇다 쳐도,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대개 없다는 시원한 나라에서 폭염이니 더더욱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전 세계가 이모양이라니. 

북극 빙하가 녹는다고 하고, 북극곰이 죽어 간다고 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와닿진 않았다. 그런데 당장 내가 사는 고장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니 기후변화가 심각하긴 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듯하다. 실제로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이 물난리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는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앞으로 점점 심해질 기후 위기의 세상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도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겠지만) 이에 반해 요즘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기후변화를 명백한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당장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우울감에 빠지는 “기후 우울”이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이상 기후로 인한 폐해가 매일같이 보도되는 데다, 이번 폭우처럼 직접 피부로 느껴지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외로 정치, 경제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는커녕 이상한 짓만 하고들 있다. 전쟁으로 인해 가스 공급이 끊기니 석탄을 더 태우는가 하면, 신재생 에너지 공급을 늘린답시고 숲을 다 파헤쳤다가 공급이 불안정해지니 화석 연료로 나머지 수요를 충당하는 등 정책 일관성이 없다.


영화 <돈룩업>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환경에 예민해진 시민들은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진다. “아,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구나.”하는 마음이다. 실제로 기후 뉴스의 인터넷 댓글을 읽다 보면, 지구야 인간이 미안해, 그냥 이러다 인류는 멸망하겠지, 이런 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진짜 우리는 망한 걸까?

사실 나도 여태 망했다는 뉘앙스의 글을 많이 썼다. 당장 온실가스를 줄여도 시원치 않은 판에, 다들 딴청 피우며 행동에 옮기지 않으니 기후 위기를 타개하기는 쉽지 않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차피 인류는 망했으니 막 살자’는 태도 또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일단 사실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 모든 사소한 이상 기후가 기후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거짓이다. 예전에도 홍수와 폭염은 있었다. 가뭄도 있었다. 기우제가 왜 있었겠는가.


다만 장기적 트렌드를 보았을 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이상 기후의 빈도가 잦아졌으며, 강도가 세지는 것은 맞다.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며 온도가 올라가고, 이에 따라 대기의 물 순환 사이클이 세지며 생긴 현상이다. 물을 잔뜩 머금은 대기는 더 심하게 지표면을 할퀴고, 다른 쪽에서는 더 심하게 수분을 쪽쪽 빨아먹는다.


따라서 이번의 폭우로 기후변화를 저주하며 인류의 흥망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우로 사람이 죽고 재산이 손실된 이 사태 앞에서 필요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는 점점 더 잦아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나마 덜 잦아지게 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 “완화” 정책)

- 앞으로 찾아올 폭염, 홍수, 가뭄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반지하 거주민이 겪은 참극을 예방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 “적응” 정책)


마이클 셸린버거의 <지구를 위한 착각>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언뜻 보면 환경주의를 비난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저자는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환경 운동에 몸담아온 사람이다. 이 책의 논지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이 담겨 있다. 저자는 잘못된 환경주의(책에서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라고 부른다)가 왜 전혀 도움이 안 되는지 짚어 보고, 다 망했다는 식의 태도가 사실은 별로 정확하지 않다는 걸 지적한다. 사실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태반이 ‘막연한 느낌’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신재생 에너지는 깨끗하다’는 통념이 있지만, 태양광 패널 폐기물이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풍력 발전소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멸종 위기종을 죽이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은 나쁘고 자연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수록 좋다’는 생각도 환상임을 꼬집는다. 예전에는 거북이 등껍질이나 코끼리의 상아에 대한 수요가 높아 무수한 동물들이 죽어 나갔는데, 이를 구한 건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심각하지 않단 게 아니라, 문명 발달 자체를 애초에 부정하는 것이 결코 환경주의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환경이 걱정된다 한들, 산업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쿠팡의 로켓 배송이며, 휴가철 훌쩍 떠나는 해외여행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건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다. 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도 기술의 발전은 환경 파괴가 아니라 혁신적인 편리함으로 이어진다.



걱정을 할 것이라면 제대로 하자

기후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 심각하다. 아마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변덕스러운 자연을 마주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추구해온 발전 자체를 부정하고 당장 아포칼립스를 외치는 것 또한 부당하다. 인류가 지구를 상당히 망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인간은 효율을 추구하고, 물심양면으로 풍요로움을 달성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환경 파괴가 따라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조차 예술을 하고 사랑을 해 왔다. 여러 모로 인간이란 굉장한 종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인간에 대해 회의가 느껴질 때면 피아니스트 랑랑이 세느 강에 띄운 배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본다. (좀 과하게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https://youtu.be/fZrm9h3JRGs


이 아름다운 선율을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도,

그것을 해석하여 건반 위에 옮기는 것도,

동당동당 음을 만드는 피아노를 만든 것도,

다른 곳도 아닌 달빛 아래 세느 강 위에서 녹화를 진행하겠다고 고안한 것도,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작품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창의적인지. 인간은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가장 숭고하고 대의를 위한 희생을 할 줄도 아는 이중적인 존재다. 한편으론 나치의 말도 안 되는 기치 하에 뭉쳐서 다른 종족을 몰살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들을 보호하고 탈출시킨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지금 지구를 아주 잘 망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지구 상 존재한 피조물 중 지구를 가장 잘 이용하고 가장 잘 공부했던 종 또한 인간이다. 한편으로는 끝없는 탐욕으로 야생 동물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의 안위를 저버린 채 동물들을 위해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인다.


범람한 하천을 보며, 이번 물난리로 인한 피해와 앞으로의 세상이 걱정되어 마음이 안 좋다. 하지만 우울과 체념 대신,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이 위기를 타개할지 고민할 때라고 믿는다. 장기적인 정책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리더를 뽑고, 좋은 기업의 물건을 사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앞으로의 삶이 녹록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응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걱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이 체념이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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