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Oct 19. 2020

여행의 이유? 여행의 방법!

교통수단과 탄소 발자국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p. 202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며, 이 문장들을 읽으며 여행이 시작되는 흥분감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모임도 못 하고 공연도 못 보고... 아쉬운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아마 가장 극단적으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여행'이 아닐까 합니다. 여권을 찾아 손에 쥐며, 또는 여행 가방을 차에 실으며 느끼는 설렘과 기쁨. 언제쯤 다시 누릴 수 있을까요?



여행의 방법 1, 비행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아쉬움을 잠깐 접어 두고(어차피 못 가는 거ㅠㅠ), 여행을 위해 선택하는 방법, 즉 교통수단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코로나로 인해 락다운을 선택한 국가가 많아지며, 올해는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상업용 항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배를 타고 크루즈 여행을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요. 특히 미국처럼 출퇴근을 위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하는 지역의 경우 이로 인한 배출량은 극적으로 감소했죠. 


부문별로 살펴보면, 원래 교통 부문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2%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 22%를 다시 꼼꼼히 뜯어보면, 승용차와 트럭 등 도로 교통이 74%, 항공 부문과 선박이 각 11% 정도를 차지한다고 해요. (아래 그래프 참조)

교통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2014년 기준, 그래프: TransportGeography.org)

그런데 말이죠, 항공기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무척 크다고 합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면 전체 중 22%의 11%니까 (갑자기 자신 없어짐)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 정도인데, 그 정도면 그렇게 엄청난 양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전력 생산이나 제조업이 더 시급한 문제 같은데 말이에요. 


문제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1].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비행기구름이 남는 건 자주 보셨을 텐데요, 이는 항공기 제트 엔진 효과로 인해 주변의 수증기가 얼어서 생기는 것이에요. 이 새하얀 구름은 햇볕을 반사시켜서 지구를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지만 지구로부터 방출되는 열을 가두기도 하는 두 가지 상반된 효과가 있는데, 과학자들이 뚝딱뚝딱 계산해 보니 열을 가두는 효과가 더 크다고 합니다. (왜 당최 인간 활동은 다 덥게 만드는 것인지


비행기구름 (PxHere)

또 제트엔진은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질소산화물을 배출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대기 시스템을 교란시켜 결과적으로 온난화 효과가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비행기로 인한 기후변화의 효과는 (1) 꽁무니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 (2) 비행기구름으로 인한 효과 + (3) 질소 산화물로 인한 효과 때문에, 단순히 탄소배출량 수치로 계산되는 2%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죠. (3.5% 정도로는 봐야 한다고 합니다. 2%에 비해 2배 가까운 수치죠.)


근데 정말 웃기는(!) 건, 항공 부문 배출량은 대부분 국가 영역이 아니라 하늘, 그러니까 국제 공공 영역에 배출되기 때문에 규제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심지어 UN 틀 내에서 국가들이 약속해서 배출량을 줄이기로 한 '파리 협약'에도 항공 부문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한 번 만들면 오래 쓰는 데다 안전 규율을 지켜야 하는 제한 조건이 많아서, 엄격한 연료 규제를 도입해도 신속한 개선이 어려운 부문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최근 Airbus사는 2035년까지 수소 에너지를 이용한 배출량 제로 비행기를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2]. 참 야심 찬 계획이지만, 우선은 유럽 내 단거리 비행에만 이용될 것이고 얼마나 상용화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비행기만 배출량 제로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소 유통 시스템에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고 공항 내에서 수송, 재충전할 인프라도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상황이 이러니, 스웨덴의 소녀 친환경운동가 Greta Thunberg가 왜 비행을 안 하는지 알 만 하지요. 개인적 차원에서 상업용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섬이나 다름없어서 비행기를 이용 안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ㅠㅠ)  



여행의 방법 2, 운전 

하늘에서 눈을 돌려 땅을 바라볼까요? 요즘 전기차가 참 많이 보입니다. 저희 가족이 캘리포니아에 살 때 마침 테슬라에서 모델 S를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였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차는 기능 위주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을 깨 버릴 만큼 굉장히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어요. 아기를 재우며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몇 달 새 도로 위에 테슬라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테슬라의 Model S (Tesla.com)

전기차가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자동차 수만 느는 것이 아닙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충전 스테이션도 함께 늘었고, 기술적으로도 슈퍼 차져 등 꾸준한 개선 논의가 나오고 있다는 소리죠.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전기차 구입을 장려하고 시장을 키워 왔습니다.  


제가 사는 이 곳 홍콩에서도 워낙 등록세와 유지비가 비싸다 보니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들은 대개 값비싼 고급차를 타는데요(이왕 사는 거), 테슬라도 자주 보입니다. 정부에서도 첫 등록세를 면제해 주고 전기차 소유를 장려하고 있어서, 2010년에는 100대도 안 되던 전기차가 2017년에는 11,000대가 넘게 등록되었다고 해요.   


전기차는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아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입니다. 충전할 때 필요한 전기는 화석연료를 태우며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만일 집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서 전기차를 충전해 가며 타고 다닌다면 정말 청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전기차가 교통 부문의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최근 한 연구 [3]에 따르면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유지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승용차의 90%가 전기차여야 하고, 이는 전체 전력 수요의 절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한 자재는 또 어떡합니까. (온 인류가 전기차를 위한 삶을 살라는 건가) 기존 자동차들도 연료 효율 기준을 높이는 등 다른 여러 정책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단 거죠. (그런데 이 와중에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 연비 기준을 약화하겠다고 발표...) 


이 곳 홍콩에는 전기차뿐 아니라 간혹 하이브리드 버스나 전기 버스가 보이는데요, 아이러니한 기사를 최근 읽게 되었습니다 [4]. 하이브리드 버스들이 기존 버스들보다도 더 연료 사용량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요. 홍콩은 워낙 여름이 덥고 길어서 냉방을 (미친듯이) 많이 하는데, 이 때문에 하이브리드 버스는 오히려 냉방에 더 많은 연료를 쓰게 된단 겁니다. 기술적으로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하이브리드라고, 전기차라고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낸다는 건 아닌가 봅니다.  

홍콩의 하이브리드 버스 (SCMP)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가고, 짐을 가득 싣고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여행의 이유는 잠시 간직해 두고, 지금은 여행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https://www.carbonbrief.org/guest-post-calculating-the-true-climate-impact-of-aviation-emissions?utm_campaign=RevueCBWeeklyBriefing&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newsletter

[2]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0/sep/21/airbus-reveals-plans-zero-emission-aircraft-fuelled-hydrogen?utm_campaign=Carbon%20Brief%20Daily%20Briefing&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newsletter

[3]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8-020-00921-7?utm_campaign=Carbon%20Brief%20Daily%20Briefing&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newsletter

[4] https://www.scmp.com/news/hong-kong/health-environment/article/1932126/hong-kongs-hybrid-electric-buses-found-use-more


매거진의 이전글 걱정을 하려면 제대로 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