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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2. 2020

우리 시대의 풍경화는 어떤 모습일까

소빙하기의 네덜란드 풍경화로부터 생각해보는 기후변화

"Winter Landscape" by Jacob van Ruisdael, 1660 (© Birmingham Museum of Art)  

이 그림은 루이스달이 그린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인데요, 보는 사람에게도 음울한 추위가 전해지는 듯합니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지만, 기후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본다고 해요(직업병). 길게 봤을 때 지구의 기후는 더워졌다, 추워졌다를 자연스럽게 반복한다고 하는데요, 서기 1300년부터 1850년까지 이어진 소빙하기(Little Ice Age)의 흔적은 이러한 미술 작품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요. 


전에 대학원 공부를 할 때 접했던 논문에서 읽었던 내용이에요 [1]. 눈이나 얼음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로부터 얼마나 날씨가 추웠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었는지 알 수 있다니 참 신기합니다. 또 당시에 좀 더 정확히 현실을 담아내는 회화 기법이 발달하며 구름의 모양까지 정확하게 그려낸 덕에 기상 현상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해요("구름 모양을 보니 폭설이 내렸겠군"). 논문에 따르면 1400년에서 1590년까지는 그림들에서 눈이 많이 관찰되고, 그다음부터 1675년까지는 장기화된 추위로 인해 얼음이 꽁꽁 언 풍경이 많이 보인다고 합니다. 1815년까지는 경제가 좋지 않아 풍경화 자체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이후 1900년까지는 다시 눈이 오는 풍경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Winter” by Lucas van Valckenborch, 1586 (© Erich Lessing/Art Resource, NY). 눈이 오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Skating in Holland" by imitator of Johan Barthold Jonkind, 1890–1900 (© National Gallery, London)

특히 이 스케이트를 타는 풍경을 보면 한파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케이트를 타려면 얼음이 충분히 두꺼워져야 하기 때문이죠. 자연이 만드는 기후 현상은 이렇게 미술 작품에도 숨어 있습니다. 



소빙하기, 기후변화를 해결해 줄까?

요런 걸 보면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렇게 말하겠죠. "원래 지구 기온이 왔다 갔다 한다던데, 덥다가 다시 시원해지겠지!"라고요. 소빙하기가 곧 또 온다는 소문은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데요, 안타깝게도 주요 언론과 과학자들은 이게 미신(myth)이라고 이미 여러 번 보도한 바 있습니다. 


우선 소빙하기가 왔던 이유는 태양 활동 때문이라고 추측하는데, 태양 흑점 수에 따라 지구에 닿는 에너지량이 변화하면서 지구의 온도를 (일시적으로) 약간 낮췄던 거죠. 태양뿐만 아니고 화산 활동과 해양 순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짬뽕되어서 발생했던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 지구 전체에 균일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니라 특히 유럽 쪽이 심해서, 영국에선 템즈 강이 자주 얼어붙을 정도였지만 다른 지역은 영향이 미미했다고 해요. 


그래도 많이 양보해서 조만간 소빙하기가 다시 온다고 칩시다. 그럴 경우 기후변화를 해결해 줄만큼 지구를 식혀 줄까요? 지금 기후변화를 막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기온 상승 폭을 제발 2도 이내로 맞춰보자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는데, 소빙하기는 최대 0.3도를 낮춰줄 수 있다고 해요 [2]. 소빙하기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를뿐더러, 와도 별로 해결되는 건 없단 소리죠. 아래 그래프를 보면 빨간 줄이 원래고, 파란 줄이 소빙하기가 왔을 때의 시나리오인데요, 큰 줄기는 큰 차이가 없는 게 보이지요.

소빙하기가 온다 해도 큰 추세는 변하지 않아요. (theGuardian.com)



겨울에 무지 추운데, 온난화는 거짓말일까?

위 그림들을 보면서 최근 겨울이 떠오른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 국가들에서는 점점 겨울에 추워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죠. 한국도 예전보다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추운 듯합니다. 그런데 겨울철의 추위조차 기후변화 때문인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원래 지구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사는 지역보다 북쪽, 극지방에는 극소용돌이(polar vortex)라는 아주아주 차가운 공기가 있는데요, 원래는 극지방의 저온과 적도 부근의 고온이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바람, 기압, 온도 등의 요인이 안정적으로 맞물려 극지방 주위에만 몰려 있었어요. 겨울에도 웬만큼 인간적인(?) 추위가 유지되는 이유였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즘 북극에 얼음도 왕창 녹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이 안정성이 깨져 버리게 됩니다. 원래 극지방 주위에 뭉쳐 있던 추운 공기는 여러 층으로 갈라지며 다른 곳으로 움직이게 되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륙 아래쪽으로 내려오며 영향을 미치게 된 겁니다 [3]. 


북극은 당장 우리가 사는 곳에서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큰 변화가 있는지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지금 북극의 공기가 우리에게까지 닿고 있을 만큼 아주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ㅠㅠ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불안정해진 Polar Vortex (Forbes.com)



우리 시대의 풍경화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지구를 데우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지난 12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은 1도 상승했는데, 그중 0.7도는 불과 지난 40년 동안 일어났어요. 뉴스를 보면 거의 매달 "올해가 가장 더운 9월이었습니다, " "올해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더운 5월이었습니다"라고 소식을 전해 주고 있고요. 


아래 왼쪽 그래프는 유명한 킬링 커브(Keeling Curve, 요즘 "Killing" Curve라고도 말장난을 합니다ㅠㅠ)라는 건데요,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 줍니다. (계속 늘고 있는 건 빼박......) 그리고 오른쪽 그래프는 기온과 함께 나타낸 건데요, 상관관계가 보이시나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보여주는 Keeling Curve와 온도와의 상관 관계 (NOAA.gov)


이렇게 명백한 추세 속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거죠. 간혹 찾아오는 겨울의 혹한 때문에,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소빙하기 때문에 기후 온난화를 조금 덜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앞서 첨부한 그림들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후대에 남길 우리 시대의 풍경화는 어떨까요? 나날이 더워지는 온도를 견디는 사람들, 높아지는 해안선, 점점 극단적이 되어가는 기후... 그럼에도 거리낌 없이 배출하는 온실 가스가 풍경화 속에 스며들어 있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1] Peter J. Robinson, 2005. Ice and snow in paintings of Little Ice Age winters.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climate-consensus-97-per-cent/2018/jan/09/the-imminent-mini-ice-age-myth-is-back-and-its-still-wrong

[3] https://www.forbes.com/sites/startswithabang/2019/01/30/this-is-why-global-warming-is-responsible-for-freezing-temperatures-across-the-usa/#76fa7909d8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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