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런 유튜브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https://youtu.be/wv5 fWjD-mLI? si=gi6 pqy19 qxZvse7 H
T의 연애! 이 남녀는 모두 MBTI에서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T인 커플이다.
“오빠, 이 옷 왜 입었어? 아저씨 같애.”
“회사에서 지각하지 말라고 연락 왔다고? 하긴, 지난주에 자기가 좀 늦게 자긴 했어.”
옆에서 이 대화를 엿듣는 F 남성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헉, 싸우겠다…!’ 싶었는데 둘은 전혀 상처받지 않고 말을 주고받는다. 왜? 둘 다 T니까. 이 영상을 보고 나는 와하하하하 웃었었다. 진짜 웃겨서 남편이랑도 같이 봤다.
그런데!
이게 2탄, <F의 연애>가 있단 걸 아시는지?
https://youtu.be/YZYoRLfaUzo?si=ssVAa822SD-mtQOS
T의 연애가 너무도 재밌었던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바로 F의 연애도 클릭을 했다. 그런데….
… 대체 뭐가 웃긴 거야?
“그거 할머니 요구르트 동영상 기억나? (눈물 훔치며) 그게 내 울음벨이야.“
“(살쪘냐는 여친 질문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야!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F의 연애 동영상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냥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대화 중에 갑자기 연결되어 다른 웃음버튼 울음버튼으로 넘어가고, 상대에게 진심으로 공감한 나머지 화를 냈다가 칭찬을 했다가 북 치고 장구 치는 사람이라 그런가. 내 사고방식으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반응을 놓고는 웃으라 하다니, 웃음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하다.
혹시 내가 잘못되었나 싶어, 남편에게도 다시 한번 같이 보자고 청했다. “여보, 이번 거는 지난번에 비해 별로 재미없지 않아?” “하하, 이것도 웃긴데?” (남편 T임)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는 ENFP인데, E와 P가 강한 우당탕쿵탕 사람임은 알았지만 F마저 이렇게 강한 줄은 몰랐다. 누군가 객관적으로 내 모습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밤새 고민하다 다음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는 T인데, F인 나랑 살려면 진짜 힘들겠다ㅠㅠ 내가 좀 T로 바뀌어 볼까?” 남편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아….. 그 고민조차 너무 F 같아.“
그러고 보면 나는 감정이입의 퀸이다. 소설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도, 다른 이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에 퐁당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이 너무도 짜릿해서 그렇다. 몇 년 전부터 독서노트랄 것도 없지만 읽은 책을 간단히 적곤 하는데, 픽션과 논픽션 중 전자 리스트가 압도적으로 길다. 꼭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거나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나 반전이 있지 않아도, 섬세한 필치로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소설가들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책 읽기는 그저 흥미일 뿐, 지식을 얻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활동이 아니다.
그렇다고 독서 활동이 그저 재미있는 시간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건 참 다행이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다른 인물을 어찌나 잘 가장하는지, 현재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기기보다 소설이 훨씬 나을 정도다. (...) 그 경험은 소설을 내려놓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중에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삶을 더욱 잘 상상할 수 있다. (...) 공감은 발전을 가능케 하고, 인간적인 공감의 폭을 넓힐 때마다 우리는 우주를 조금씩 더 열어젖히게 된다.
-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p. 136
그러나 감정 이입을 잘하는 특성도 양날의 검인데,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화내는 이유가 된단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아이는 나와 다른 하나의 인격체인데, 도무지 정서적으로 분리를 잘 못 시킨다. (이건 F랑은 상관없는 것 같긴 하지만) 타향살이를 할 때 내가 한창 외로웠을 시절, 아이가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으면 나는 그걸 가지고 머리 싸매고 고민했고, 걱정에 맘이 쓰렸다. 지금 돌아보니 아이는 그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겪는 것이었는데, 엄마가 나서서 더 난리였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다 공감하겠지만, 아이는 학교 생활에 대해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굉장히 주관적인 코멘트를 한두 마디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아들 엄마들은 제각각 모여 이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큰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리고 이 모임에는 반드시 딸 엄마도 1인 이상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엄마들의 말을 듣기도 전에 혼자서 그 말 한마디를 가지고 아이의 세계를 상상하고, 고통을 만들어내고, 해결책을 제시하곤 했다. 아들아, 미안하다.
요즘 MBTI는 내 학창 시절의 혈액형에 가까울 만큼 밈화되는 것 같다. (B형 남자는 나쁜 남자!!) 사람의 성격이 4가지로 나뉠 수 없는 것처럼, 16가지로도 무 자르듯 나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 그리고 유달리 F가 강한 사람이란 걸 깨닫는 건 도움이 되었다. T가 보면 좀 한심할지 몰라도, 극 F를 위한 자리도 세상 어딘가엔 있겠지. 에라, 소설이나 한 권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