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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pr 19. 2023

싸이코패스처럼 살고 싶다 (2)

이번 글은 장래희망이 싸이코패스였던 지난 이야기의 연장.


https://brunch.co.kr/@yjeonghun/127


발단은 이미 작고하신 영국의 신경과 의사샘이었다.


그저 바이크를 타고 글을 쓰는 유명한 의사로만 알고 있던 나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영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프로급으로 했고, 오토바이를 타며 목숨을 몇 번은 잃을 뻔한 것, 엄청난 독서량과 글쓰기(말년에 세어보니 평생 쓴 일기장이 천 권에 달했다고!), 동물학과 음악에도 깊은 조예가 있단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놀랐던 점은 젊은 시절 암페타민에 상당히 깊게 중독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그것이 의사 수련 중이었다는 것이다. 마약 중독에 빠진 상태로 논문을 읽고 공부를 하고, 전문의까지 되었다. 심지어 중독이 심해졌음을 스스로 깨닫고 마약을 끊기까지 했다.


그렇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 이야기다. 적어도 두세 사람의 인생을 혼자서 다 살아 버린 것 같은 분. 대체 이런 삶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헤르미온느의 시계라도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머리가 좋고 에너지가 많았던 것일까?


물론 이 분에겐 딸린 가족이 없었고 (노년에 일생의 사랑을 만나기는 하지만 거의 평생을 홀홀단신 살았다), 다른 고려 사항 없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그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과 성취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의학계에서 다소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과학과 대중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말년에는 다른 과학자들이 컴퓨터 모델링으로 뇌신경을 실험하는 등 최신 기법의 연구 프로젝트에도 큰 관심을 보일 만큼 그의 정신은 젊었다. (불혹이 되지도 않은 나는 새로운 지식은커녕 스마트폰만 겨우 쓰고 있다..)


아무튼, 그의 책 <온 더 무브>를 읽고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아무래도 비결은 올리버 색스 시절에 스마트폰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라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고 만 것이다. 편리하기 그지없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는 이 조그만 물건은 적어도 내게는 요망하기 그지없는 집중력 도둑이다. 내 학창 시절이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도 집중해서 성취하는 경험을 아예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이 '작고 유용한 장치'는 이제 우리의 삶을 가상현실 속에 더 깊숙이, 더 강력히, 더 비인간적으로 매몰시킨다. (...) 오늘날에는 생각, 사진, 움직임, 물건 구입 등 모든 개인사가 공개된다.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세상에서, 프라이버시는 존재하지 않으며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욕구도 없다. 매분 매초는 손에 쥔 장치를 사용하는 데 할애된다. 이런 가상세계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결코 홀로 있을 수 없으므로, 조용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식하거나 집중할 수 없다. 그들은 문명의 편익과 성과를 대부분 포기했으므로, 예술 작품, 과학 이론, 일몰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호젓함과 여가, 자유재량, 진정한 몰입감을 느낄 수 없다.

- 올리버 색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중



화살이 스마트폰으로 향하게 된 계기는 회사였다.


최근 내가 일하는 쪼그마한 회사는 점점 바빠지고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최근 미국 정부에서 어떤 법을 만들었는데 그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쳐, 저어기 구석에서 열일하고 있던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던 것이다. (정부가 만드는 기후변화나 에너지 정책이 어떻게 민간으로 흘러들어가 변화를 이루는지 목격하는 게 참 흥미롭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주 20시간, 매일 4시간 이내로 일하고 있었는데 보스가 며칠 전 근무 시간을 조금 늘려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내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 시간제로 돈을 받기 때문에 시간이 늘면 수입이 그만큼 늘기 때문이다. 둘째도 오전 두어 시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서 (적응하자마자 아픈 바람에 일주일 내내 어린이집에 빠지기는 했으나) 시간 여유가 좀 더 생기기도 했다.


일단 향후 두어 달 동안 시간을 늘려보고, 다음 재계약 때 적당한 주당 업무 시간을 정해 보라기에 덥썩 알았다고는 했는데… 실은 여태 하루 네 시간을 채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급한 볼일이 생길 때는 그렇다 쳐도, 일단 기본적으로 집에서만 일을 한다는 게 시간 관리가 참 어려웠다. 집에 있다 보니 지저분한 싱크대며 빨랫감이 눈에 띄었고, 잠옷 상태 그대로 책상에 앉다 보니 자꾸만 침대가 나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큰 유혹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다.


업무에 집중을 하려고 하면 왜 꼭 집에 달걀이 2개밖에 남지 않은 사실이 떠오르는 건지… 달걀을 주문하다 보면 쿠팡과 마켓 컬리를 뒤적이는 나 자신을 20분 후에야 발견하게 된다. 전화기를 멀리 치우고 모니터를 바라보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나면, 갑자기 포모도로 기법으로 일을 하고 싶어져서 유튜브에서 맘에 드는 포모도로 영상을 검색한다. 문제는 영상이 맘에 들면 음악이 맘에 안 들고, 음악이 좋으면 영상이 별로다. 이런 식으로 별 수확 없는 유튜브 뒤적거림을 또 10여 분… 어느덧 시간은 40-50분이 훌쩍 지난다.


색스 박사님은 암페타민에 취해서도 공부를 하신 분인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자괴감이 들면 일기장을 열어 앞으로는 꼭 집중을 잘해보자고 끄적거려 본다. 그렇게 10년 차 재택근무러의 하루는 지나간다. (써놓고 보니 더 한심…)



나의 또 다른 업무, 육아의 관점에서 생각해도 휴대폰은 필요악이다. 그때만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차곡차곡 담아낼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휴대폰 카메라 덕이다. 구글 포토에 지층처럼 담긴 나와 가족의 역사는 휴대폰이 아니었으면 내 얄팍한 뇌세포에만 의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육아일기도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앱으로 바로 올려서 쓴다. 아이가 처음으로 한 말이나 행동이 있으면 주머니의 휴대폰을 열어 바로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신저나 포털, 웹툰 앱(나는 의식적으로 SNS를 하지 않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인스타도)은 육아에 양가적이다. 아이가 혼자 놀 때 옆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면서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내 모습....인가. (이미지: Unsplash.com) 


문제는 “휴대폰이 고맙고 편리한 경우”와 “별 이유 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시작은 그게 아니었는데 문득 정신을 붙잡고 보면 엄지족이 되어 있는 나의 모습. 우리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또 구렁이 담 넘듯 교묘하게, 이 두 모드를 넘나들고 있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유튜브 쇼츠나 틱톡의 늪에 빠지는 건 우리 뇌의 보상 회로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쾌락의 총합은 일정하기 때문에, 쾌락이 큰 경험(음주, 도박, 더 극단적으로는 마약)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소소한 쾌락으로는 도무지 만족을 할 수 없다. 예전 시대에는 잡지를 읽거나 체스를 두는 것이 크나큰 오락거리였는데, 이제는 손가락 하나로 자극의 차원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1].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 큰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재미없는 오락거리를 찾아야 한다. 풍경 보기(...), 독서, 산책 등을 습관화해서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스와이프 하는 걸 막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결론에서부터 싸이코패스 같다! 카톡과 인스타 대신 풍경을 보라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보다 풍성한 삶의 열쇠라고 하니. 


아무튼 그래서, 지난번 싸이코패스 글 이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고백. 그러나 여전히 간절하게 변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1] 이 부분은 (제목보다 훨씬 훌륭했던) 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을 읽고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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