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둘이 되자 느끼는 점들
“둘째 생기니 힘들고 정신없지?”
8년을 외동 엄마로 지내다 뒤늦게 둘째가 생긴 내게 주변에서 많이들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그냥 웃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힘이 들긴 두세 배로 힘든데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둘째가 생겨서 그런 건진 알 수 없다) 마음이 늘 뭔가 따뜻하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계획이든 아니든, 아이가 하나 더 생겨서 낳고 키우면서 후회된다는 말을 하는 부모는 한 명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가상의 시나리오에서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아이지만, 진짜로 이름과 몸을 가지고 눈앞에 나타나면 그 아이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랬다. 둘째가 계획에 없이 생겼을 때는 놀람 반, 걱정 반이었고 아직은 첫째만이 관심사였다. 하지만 막상 꼬물거리는 아기가 태어나자, 첫째 아이와는 사뭇 다른 기질과 성격을 가진 이 새로운 아기에게 푹 빠져 버렸다. 첫째는 첫째대로 사랑하면서 온전히 또 다른 사랑 보따리가 생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둘째가 태어나니 집안꼴은 폭탄을 맞고 체력 배터리는 매일 방전이지만, 육아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줄었다. 거 참 신기한 일이다.
새해에 아이가 셋인 시누이네를 만났다. 나의 시댁은 대중 매체에 나오는 시월드와는 조금도 닮은 점이 없는 곳인데, 특히 나는 시누이가 나와 영혼이 닮은 느낌이 들어 정말 좋다. 그러나 나와 참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예전부터 아이 하나만 가지고도 허덕대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일찍이 아이 셋을 낳아 벌써 첫째가 십 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아이 셋을, 그것도 대부분 해외에서 키우다 보니 육아 내공과 여유가 보통이 아닌 것도 나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우당탕탕 종종종종) 하지만 무엇보다 난 전부터 아이가 셋인 데서 오는 복작복작함이 참 부러웠다. '다복함'이라는 말을 실체로 옮겨 놓은 기분이랄까. 그래서였을까. 외동아들을 키울 때부터 나는 둘째를 낳을 자신은 없으면서 우리도 아이가 둘, 셋이었으면 어떨까 항상 생각했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온 아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는 내내 젖을 먹고 움직이지도 못하니 한 사람이 늘었다기보다 그냥 내 몸에 딸린 덤 같아서 4인 가족이 된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기가 돌아 눕고, 배밀이를 하고, 기고, 마침내 걸어 다니기 시작하며 (요즘은 뛴다..) 새삼 식구가 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은 이유식도 졸업하고 어른 밥을 먹는데, 쌀 줄어드는 속도부터 심상치 않다.
우리 둘째는 존재감도 보통이 아니다. 8살이나 많은 형아를 엄청 좋아하면서도, 엄마가 형아를 안아주거나 둘이 조근조근 얘기하면 그 꼴을 못 보겠는지 어찌나 소리를 지르며 질투하는지 모른다. 쪼끄만 주제에 형아를 할퀴며 엄마에게 떼 놓으려 용을 쓰곤 한다. 또, 형아는 초등학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과자며 젤리도 자주 먹는데, 자기는 안 주고 혼자 먹으니 울고 불고 난리다. 형아가 과자 조각이라도 떨어뜨리면 엄마 눈치를 살살 보며 입에 슬쩍 가져가기도 한다.
터울이 큰 둘을 키우는데도 이렇게 소란인데, 터울 적게 둘, 셋을 키우시는 분들은 정말 최고 리스펙이다.
아무튼 이제 어엿한 4인 가족이 되었다. 뭐가 제일 좋냐고 누가 묻는다면... 진짜 속마음을 고백하자면, 둘째가 태어나서 가장 좋은 점은 ‘외로움의 해소’다.
첫째만 있을 때 나는 그렇게도 외로웠다. 외국에서 쭉 살아서일지도 모르고,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녀서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외국에서도 친구를 열심히 사귀고 아이 친구 가족들과도 꾸준히 교류하는 편이었다. 집에 누군가 불러 홈파티도 하고 함께 나들이도 종종 다녔다. 하지만 종일 놀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와 단둘이 있는 그 썰렁한 기분이 그렇게도 싫었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서 집을 비우면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어떻게 시끌벅적하게 채울지 끝없이 고민했다.
동네 친구들과 플레이데이트도 잡고, 시장에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하루에 이 많은 걸 다 해도 결국 집에 돌아오면 허무하고 적막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그 감정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열을 냈고, 아이는 1만큼의 잘못을 하고 10만큼 혼이 났다. 내 오롯한 애정과 우려의 대상이 되어, 나름대로 고생을 톡톡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쬐그만 아기가 집에 생기자 웬걸, 첫째는 그냥 믿고 방치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기를 재우고 남는 잠깐의 시간 동안 큰애에게 일일이 지적질을 할 틈이 없어서, 그냥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같이 누워만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첫째에게는 약간의 섭섭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보다 훨씬 큰 자립심과 성장을 돕기도 했다. 첫째는 아직도 엄마 관심이 가끔은 고프지만, 혼자 뭐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남편이 집에 없어도 집안이 복닥복닥하고 따스하다. 아장아장 아기가 집안 물건을 부수며(..;;;) 깔깔대기도 하고, 큰애를 쫓아다니다가 넘어지면 울기도 한다. 아빠가 퇴근하면 아이 둘이 달라붙어 그야말로 아수라장인데, 난 그 풍경이 흐뭇하기만 하다. 그래서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둘째 생각이 있다면 당장 지르라고 오지랖을 부리는 둘째 전도사(빌런)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이건 그냥 내게 한정되는 이야기다. 유달리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가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외국에서 이사를 다니며 사느라 특히나 허전하고 쓸쓸했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국한 지금도 타지에 살고 있는데, 딱히 외롭단 생각이 안 든다. 예전에는 남아 돌았던 에너지가 외로움으로, 허전함으로 뻗어 나갔다면, 이제는 품 속의 아이 둘로 꽉꽉 채워지고 있나보다.
아무튼 그래서..
둘째 생각이 전혀 없으신 분들이라면 상관없지만, 혹시나, 호옥시나, 생각이 있는데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둘째 낳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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