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pretty much fucked.
(아무래도 좆됐다)
구글에 영어로 마션(Martian)을 쳐 보면 연관 검색어로 '마션 첫 문장(Martian first sentence)'이 나옵니다. 번역도 기똥차게 잘 된 이 문장, 아무래도 좆됐다는 이 문장. 읽자마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나 <설국>("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7년의 밤>("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의 첫 문장이 인상적인 건 유명하지만, <마션>의 첫 문장도 이리 강렬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지난주부터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고 있는데요, 평소 SF라는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던 제가 갑자기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푹 빠져서 하루 만에 다 읽고, 이어서 <마션>까지 탐독했거든요. 둘 다 정말 너무 재밌어요. 너무, 너무 재밌다구요. 독서의 주목적이 순전히 오락(...)인 저로서는 아무래도 '재밌는 책'이 일등으로 좋습니다. SF는 아무래도 과학 얘기가 많이 나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니, 내레이션을 하는 화자가 주절주절 평이한 말로 풀어주는 게 술술 읽히는 비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목숨이 달린 긴박한 순간에도 농담 따먹기를 하는 유쾌함. 긍정왕 주인공 덕에 손에 땀을 쥐는 이 고독한 여행이 우울하지 않게 펼쳐지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SF라는 장르는 디스토피아적인 우울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블랙 미러>라는 드라마도 끝내주게 재밌긴 하지만 전체적인 톤이 매우 어둡죠.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나 환경 재앙이 닥쳐온 지구가 나오니 말이에요. 그래서 앤디 위어의 문장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못 말리는 낙천성”이 더 매력적이었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방귀나 뀌련다'는 정신이랄까요.
그럼에도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딱 한 군데, 제 마음을 울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세 생명체로 인해 태양이 점점 어두워지는 현상을 기본 설정으로 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부딪친 현재의 위기, 지구 온난화와는 반대로 지구가 너무 추워져서 인류가 멸종할 위기에 처한 겁니다. 그래서 인류는 엄청나게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남극 대륙 아래 깊숙이 파묻힌 메탄가스를 대기로 방출하기로요. 그것도 핵폭탄을 터뜨려 얼음을 부숴 버리고,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메탄 층을 깨우기로 합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도 더 강력한 온실가스로, 대기 중의 열을 충실하게 가둡니다. 아무리 햇빛이 약해지고 있다 해도, 이 정도의 인위적 변화는 생태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테지만… 멸망이 코앞인 인류에게는 이 “언 발에 오줌 누기” 작전이라도 시행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류는 100년 동안 실수로 지구온난화를 일으켜왔어요. (...) 온실가스를 배출해 멋진 담요를 씌운다면 시간을 좀 벌 수 있겠죠? 그 덕분에 지구가 파카를 입은 것처럼 단열 효과를 누릴 테고, 우리가 얻는 에너지도 더 오래 지속될 테니까요.
이제는 메탄이 우리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도 아니고 절친이라니까요.
르클레르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기후 과학자는 마지못해 메탄가스를 인위적으로 방출하는 계획에 동조하지만, 결국 울음을 터뜨립니다. 참 마음이 아픈 장면이었지요.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도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요?
추워지는 지구는 아니지만
이 소설과는 반대로 현실의 지구는 온실가스 비상사태죠. 2023년은 기록된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였고, 아마 올해는 더 더워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오래간만에 무척 춥지만 사실 이번 1월도 여태까지는 1월답지 않게 꽤나 포근했었지요.
상황이 이러다 보니 기후 위기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경고의 목소리와 이를 막기 위한 노력에 대해 주워듣게(?) 마련입니다. 국가에서, 기업에서 홍보하는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서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고요. 요즘 서울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기후동행카드>라는 것도 만들었더라구요? 여기도 '기후'라는 말이 들어가는 걸 보면, 이제 기후 위기는 대중들에게도 성큼 다가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정말 국가나 기업에서 뭔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을까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넷 제로 정책도 다들 공표하고 있는데, 다들 정말 이런 거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재생 에너지 발전량도 늘고 있고, 전기차도 거리에 많이 보이니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실 상황이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넷 제로'라는 것 말이에요, 그럴듯한 목표긴 한데, 많은 대기업들이 실제로 온실 가스 배출량을 줄이기보다는 돈으로 해결하고 있거든요. 대기업들이 어떻게든 신기술에 투자를 해서 넷 제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빡'하고 때리는 소리나 다름없을 텐데요. 그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다큐멘터리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NrImyDV328
환경 다큐 이런 거 싫어하시는 분들도 한 번쯤 볼 만한, 재미도 있는 다큐입니다. 여기서는 넷 제로의 허상을 여실히 깨부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업들은 경제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건 다이어트랑 똑같습니다. 예를 들어 칼로리 제한을 할 때, 먹는 양 자체도 제한을 해야겠지만 이미 떡볶이와 튀김을 먹어버려서 칼로리 상한선을 넘겨버린 상황이라면 열심히 운동을 해서 칼로리를 태워버려야겠죠?? 마찬가지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배출량 자체를 줄이기도 해야겠지만 배출된 부분을 '흡수'시키기도 해야 합니다. 이미 대기 중으로 배출되어 버린 부분을 어떻게 흡수하느냐 하면, '오프셋'이라는 제도로 그게 가능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에 돈을 내면 배출량을 줄이는 것과 똑같이 취급해 주겠다는 거예요.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니, 줄이지 못한 배출량은 나무 심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기적의 논리(?)죠.
그리고 실제로 셰브론이나 쉘 같은 석유화학 기업뿐 아니라 코카콜라 등 전 세계적 대기업들은 이 방법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그냥 나는 내가 하는 거 계속할게. 대신 나무 많이 심을 테니 좀 봐줘!"라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정말 실효성이 있느냐입니다.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들의 배출량을 모두 흡수하려면 온 지구를 나무로 몽땅 감싸도 부족하단 겁니다. 게다가 기후 위기로 기온이 상승하고 가뭄이 심해지며 산불이 예전보다 점점 잦아지는데, 산불이 한 번 나면 이런 '숲 프로젝트'들이 죄다 도루묵이 되어버린단 것도 문제입니다. 대기업들은 이미 돈을 내고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샀는데, 그 숲은 망가져 버렸는데요? 숲이 불타며 온실가스를 흡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배출해 버렸는데요? 이런 문제들은 대체 어쩌냔 말입니다.
마치 가정을 버린 사람이 양육비라며 다달이 돈만 보내고 한 번 찾아가지도 않으면서,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자기 할 일은 다 했다고 우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돈 냈으니 됐지?" ....뭐라는 겁니까.
아무튼 그래서 이 오프셋 제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심지어 삼림자원이 풍부한 저개발국에 가서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기존에 숲에 살던 원주민들의 생계에 타격을 미치는 등 '기후 식민주의'로까지 발전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고요. 그럼에도 아직 이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는 이유는, 기업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이렇게라도 유지시키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강제적으로 배출량을 줄이는 규제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앞으로 지구는 점점 더 더워만 질 테니 자발적인 노력은 일단은 환영이지요.
다만 그렇게 달성한 넷 제로가 진짜 넷 제로가 아닐 수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배출량을 다 줄였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단 거죠. 사실은 돈으로 해결한 부분도 많으니까요. 성큼 다가온 기후 위기나 점점 나빠지는 지구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되실 분도 많으실 텐데요, 걱정이 된다면 이런 '비판의 렌즈'를 착용하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니까요. 앤디 위어의 소설처럼 한없이 낙천적일 수만은 없지만, 일상적으로 이야기하고 평소 관심을 갖는 것, 그 정도는 함께 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