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완전히 잊었던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둠 속에서 파밧, 하고 켜지는 전구처럼.
오늘 방학이라 집에 있는 큰애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날이 무척 차서인지 연못 물이 얼어 있었다. 아이가 작은 돌멩이를 주워 얼음에 던져 보았다. 세게 던지면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단단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수십 년 전 기억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언니가 6학년쯤의 일인 듯하다.
엄마는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우리에게 스케이트를 배우러 다니라고 하셨다. 당시 살던 곳 근처의 문화 회관에 분명 아이스링크가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그때는 그 시설이 생기지 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배울 장소는 매우 의외의 곳이었으니까.
며칠 후 새벽, 엄마는 우리를 깨우셔서 인근의 초등학교로 데려가셨다. 거기에는 어떤 아저씨가 봉고차를 끌고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와 몇몇 다른 아이들을 태운 봉고는 10-20여분을 달려 도시 외곽으로 나갔다. 안 그래도 어두컴컴한 겨울철 이른 아침의 한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비닐하우스만 덩그러니 있는 논밭이었다. 비닐하우스에 들어간 우리는 가져온 스케이트를 꺼내 발에 신고 밖으로 나갔다. 꽁꽁 언 논, 그게 우리의 첫 아이스링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논은 무척이나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보기에도 그리 매끈하지는 않았는데, 부분 부분 울퉁불퉁하기도 했고 미처 수확하지 못한 벼인지 마른풀인지가 중간에 삐죽 나와 있기도 했다. 그래도 초보 스케이터가 기본기를 연마하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나와 언니는 단단히 외투를 여미고 장갑을 끼고 빙판 위를 미끄러져갔다.
새벽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고 단단해서 여린 살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수업이 몇 분이나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 타고나서 얼굴이 무척이나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남자아이는 강도의 복면처럼 눈만 내놓는 얼굴 가리개를 하고 다녔는데, 그게 꽤나 좋아 보였다. 빨개진 두 볼을 하고 귀가를 할 무렵이 되면, 어느덧 사방은 환해져 있었다. 나와 언니는 스케이트를 타서 얼얼한 발을 신발에 욱여넣고 터덜터덜 귀가해서 아침을 먹었다.
첫날 이후로는 엄마가 우리를 봉고차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지 않으셨다. 아니, 깨워주시지도 않았다.
나와 언니는 새벽(어렴풋한 기억에는 5시 45분 정도였던 것 같다)에 알람 시계를 맞춰놓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옷을 주워 입었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물을 끓여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타서 마셨다. 한 번은 언니가 너무 졸려서 컵을 내려놓으려다가 놓쳐서, 세게 집어던진 것처럼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우리는 당황해서 대충 쓸어 담고는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그 후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 나중에 일어나신 엄마가 깨끗하게 치워놓으셨겠지 싶다.)
안에 내복을 입고 외투와 장갑, 모자까지 중무장을 해도 한겨울의 새벽은 무척이나 추웠다. 하지만 언니와 함께 봉고차를 타고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동안, '가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스케이트도 실력이 조금씩 늘며 재미있어졌고, 특히 코너를 도는 법을 배울 때는 설레기도 했다. 그래도 어스름한 빛 속에 꽁꽁 언 논을 바라볼 때 느끼던 이상하게 낯설고 서러운 기분은 생생하다. 아마 언니가 없었다면 절대로 혼자 가지 않았으리라.
레슨이 끝나고 스케이트를 벗을 때면 햇빛이 비닐하우스 안까지 비쳐서 꽤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도 비로소 기분이 풀려 재잘재잘 떠들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어떤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가 이런저런 간식을 팔고 계셨는데, 스케이트 강사님의 가족이었다고 기억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고 스케이트를 탄 뒤에는 꽤나 허기가 져서, 거기서 파는 간식 냄새는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어묵과 쥐포 정도만 기억나는데, 특히 쥐포 굽는 냄새는 기가 막혔다. 어떤 아이들은 돈을 가져와 사 먹기도 했는데, 우리는 늘 새벽마다 용돈을 챙길 여유가 없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레슨 기간이 끝나가던 무렵 딱 한 번 돈을 챙겨가서 사 먹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별 맛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쥐포도 라면처럼 남이 먹을 때가 제일 맛있어 보이나 보다.
삼한사온이라고, 1월의 날씨라고 매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해도 그랬다.
하루는 무척이나 포근해서, 논이 덜 얼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논의 가장자리는 물이 비칠 만큼 얼음의 두께가 얇았다. 강사님께서는 그쪽을 가지 말라고 소리를 치셨는데, 어떤 아이가 가까이까지 갔다가 얼음에 마구 금이 가서 혼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위험한 순간이었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 연못 가장자리에 덜 언 부분을 보고 그때 생각이 났다.
그 강사님은 겨울마다 논을 얼려서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쳤다. 우리는 그 해만 갔지만, 그다음 해에도 주변에 그 수업에 간 친구가 있었다. 아마도 그 이후로 몇 년 더 못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주변에 아이스링크도 생겼고, 논을 얼려서 수업을 하는 방식이 점점 더 학부모들의 수요와는 멀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해가 뜨면 얼음이 어느 정도 녹을 수밖에 없기에, 해뜨기 직전 새벽 수업을 하셨던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서 그런지 내 눈에 강사님의 실력은 너무나도 눈부셨었다. 시범을 보일 때 스케이트의 날이 슥슥 얼음판을 스치는 날카로운 소리, 운동선수답게 날렵한 몸놀림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고 나니 어쩌다 논을 얼려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생각하셨을지 그 속사정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히 오래된 스케이트와 낡은 옷가지,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가족들의 어두운 표정까지, 어려운 사정이 있었을 것만 같아 지금에서야 마음이 쓰인다. 부디 그 이후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셨기를.
오랜만에 언니와 옛날 얘기를 나누었는데, 언니도 그 겨울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전인지, 세상에 그사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이야기했다. 기후 위기로 겨울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데, 이미 사라진 수업이기는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어차피 지속하지 못했으리라 싶어 씁쓸하다.
1월의 당연한 추위가 유달리 시리게 느껴질 때, 앞으로도 얼린 논이 생각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 시기는 지나갔지만, 그 이야기를 나눌 언니가 그때도 지금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수십 년 전의 추운 겨울, 컴컴한 새벽에 집을 나서는 자매의 모습이 문득 그립다.
*표지 이미지 출처: <용인시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