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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6. 2020

달콤한, 그리고 지속 가능한, 나의 도시

지구에는 모두 몇 개의 도시가 있을까? (...) 아득하고 머나먼 이국 도시들의 이름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수십군데는 댈 수 있다. 스톡홀름의 나, 뉴욕의 나, 콸라룸푸르의 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 '그녀'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중

책 속에 나오는 '은수'의 도시. 달콤하다기보다는 무정하고, 치열하고, 외로운 곳. 하지만 벗어날 수는 없는 장소로 그려지죠. 세상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은 도시화되고 있습니다.


나날이 도시화되는 지구 여러 지역들 (이미지: World Economic Forum)

도시란 인구와 건물, 교통이 밀집된 곳입니다.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곳이죠. 제가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곳도 빌딩 숲이 빽빽한 홍콩이고요, 손바닥만 한 땅이 남아도 거기에 건물을 짓고야 마는 그런 곳이지요.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은 이런 도시 개발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속 가능한 도시, 친환경 도시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친환경 도시'라고 하면 뭔가 초록 초록한 풍경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배경에 돌아가는 커다란 풍력발전기, 뭐 그런 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가 있어야 친환경 도시라고 부를 수 있걸까요? 모든 차가 전기로 돌아가서 배기가스가 0이 되면 될까요? 아니면 건물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을 부착해서 청정한 전력으로 모든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면 될까요?  

내 마음 속 막연한 에코시티의 모습 (이미지: Smappee.com)

지속 가능한 도시란, 간단히 말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도시"를 말합니다. (이렇게 뜬구름 잡을수가) 지금의 많은 도시들은 어떤가요?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어대고 소음 공해를 만들고, 아파트와 사무용 건물에서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쉴 새 없이 뜨거운 공기를 배출하고요. 햇볕 쨍쨍한 낮에도 사무실마다 형광등이 켜져 있고, 옥상은 루프탑 가든은커녕 삭막한 콘크리트 위 담배꽁초 파티 아닌가요? 지속가능 도시는 바로 요걸 반대로 해주면 됩니다.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면:


- 신재생 에너지 적극 활용

-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로인 교통수단

- 자연 환기/채광 시스템 도입으로 냉방과 조명 에너지 줄이기

- 물을 절약하는 수도 시스템


이런 것들이 있겠죠. 구글에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해 검색하다 보면 한 도시라도 어느 기관에서 조사했느냐에 따라 들쭉날쭉한 순위가 나옵니다. 방금 말한 환경적 측면 말고도 사회적 지속성(교통 인프라나 교육의 질, 기대수명 등)을 포괄적으로 보기도 하니까요. 한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도시 중 홍콩이 지속 가능성 8위던데.. 에너지 규제라곤 없고, 신재생도 미미하고, 재활용도 시늉만 하는 이 곳에서? 갸우뚱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교통 인프라나 교육 수준 등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입니다 [1]. 코펜하겐은 이미 지속가능성을 상당 기간 밀어붙인 도시로, 폐기물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고, 흔히 타는 페리를 백 퍼센트 태양에너지로 운영하는 등 도시 곳곳에 초록 초록이 묻어난다고 해요. 2025년까지 배출량 제로, 신재생 에너지 비율 50% 이상을 목표로 잡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죠. 도시의 규모가 비교적 작기는 하지만 세계 주요 도시 중 하나니까요.


교통 부문도 그렇습니다. 전체 교통량의 무려 75%를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충당하는 것이죠. 이 중 출퇴근이나 등하교의 경우 75%를 도보나 자전거로, 모든 경량 교통수단의 20-30%를 전기나 바이오가스 등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말이 75%지, 시민 차원에서의 지지와 실천이 없다면 꿈도 못 꿀 수치죠.

지속가능한 도시 상위권에 꼭 이름을 올리는 코펜하겐 (이미지: World Finance)

코펜하겐의 경우는 기존의 도시에 새로운 인프라를 도입하여 조금 더 지속 가능하게 바꾸는 사례입니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지만, 기존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이다 보니 진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죠. 타당성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하고요. 기존 도시들의 경우 규모, 인구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적 영향력이 크니까요.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간혹 아예 시범 프로젝트처럼 맨바닥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스마트 시티라고도 부르는 공간을 만드는 건데, 예를 들어 100퍼센트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제로 배출량을 달성하는 그런 도시를 만드는 겁니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고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죠.


아랍에미레이트의 Masdar는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도시를 목표로 세워진 소도시입니다 [2]. 150억 달러를 들여 기획한 탄소제로, 폐기물 제로 도시로, 4만여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지요. 거의 100프로 태양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며, 경량 전철 시스템뿐만 아니라 무인으로 운영되는 자석 트랙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요(우와 신기!). 모든 표면에서 태양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고, 물을 처리하고 재사용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을 겁니다. 

보기만 해도 스마트한 Masdar City의 조감도 (좌: WWF, 우: Time Out)

그런데 말이죠.. 다 좋은데, 팡파레를 울리며 시작한 이 도시는 계획보다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해요. 우선 탄소중립을 야심찬 목표로 했고 청정에너지만을 사용하여 독립적으로 도시의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겠다고 선언했었는데요. 결국은 그게 쉽지가 않아 전력망에 연결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저, 우리 탄소중립 아무래도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인정했다고 하고요. 저 멋져 보였던 자석 트랙 어쩌고도 결국 시범 운행 구간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시 건설이 청사진처럼 완성되지 못하자 초반에 관심을 보이던 사업체들도 들어오기를 꺼려해서, 가디언지가 "세계 최초의 청정 유령도시"라고도 부르기도 했다죠.



이걸 보면 제2 생물권 실험이 생각납니다. 1991년부터 2년 간 미국 애리조나에 '축소판 지구'를 만든 야심찬 실험이었는데요, 엄청난 돈을 들여 동식물과 무생물, 사람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태계를 꾸렸습니다. 분명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결론은 실패.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사람들이 숨을 쉴 산소마저 부족했고, 막판에는 개미와 바퀴벌레가 들끓는(어우ㅜㅜ) 풍경만이 남았다고 해요.

실패로 끝난 제2 생물권 (이미지: 위키피디아)

새로 만든 스마트 도시처럼, 역시 막상 해보면 이론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지구가 우리에게 공짜로 베푸는 이 생태계가 얼마나 미묘하고 섬세한지, 또 복제 불가능한지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죠. 세계의 여러 도시를 들여다 보고, 배울 건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코펜하겐의 사례처럼 일관적이고 장기적인 도시 차원의 목표와 계획 조금이라도 더 친환경적인 도시의 내일 위해 필수적입니다.


독일의 베를린도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5%나 배출량을 줄여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비록 베를린이 "녹지가 많아서 녹색도시(...)"일뿐 실제로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되기까지는 먼 길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도시인 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있는 듯합니다. 제곱 km당 인구가 3,875명이나 되는 대도시니까요.


일하고, 살아가고, 꿈을 꾸는 우리의 도시. 비록 완벽한 지속 가능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시의 지속가능성을 주목하고 지지하는 것은 우리 도시인의 과업 아닐까요?


[1]  https://stateofgreen.com/files/download/1901

[2]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16/feb/16/masdars-zero-carbon-dream-could-become-worlds-first-green-ghost-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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