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특파원 소식]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를 헤쳐나가는 사회
[해외특파원 소식]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를 헤쳐나가는 사회 시리즈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각 국가의 어른들과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정책적인 배려부터 몇몇 좋은 어른들의 따뜻한 사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소개할 미국, 폴란드, 독일, 홍콩, 영국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다들.. 힘드시죠? ㅠㅠㅠㅠ
이 곳 홍콩에서는 2020년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 같아요. 전 세계를 몸살 앓게 하는 이 괴악한 바이러스는 바로 어깨를 맞댄 중국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홍콩 접경의 광동성도 아주 심하게 휩쓸었고, 이미 1월 하순부터 시작된 홍콩의 초상집 분위기는 세 달이 지난 지금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요즘 갑자기 다시 뜬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을 보면 홍콩에서 전염병이 시작되는데요, 사실 그만큼 홍콩은 전염병이 돌기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바이러스가 생각이란 걸 한다면 ”제군들! 살아남고 싶다면 모두 홍콩으로!”하며 몰려왔을 거예요. 도심이 발달한 데 비해 공간이 부족해 인구 밀도가 극도로 높은 데다, 세계 각국 사람들의 유입이 많은 국제 도시이기 때문이죠.
5월 현재 한국은 조금씩이나마 확산세가 꺾이는 추세 같아요. 홍콩도 제2의 확산이 일어났다가 지금 많이 진정되는 모양새지만, 무기한 연장된 휴교령은 풀릴 기미가 없고, 집에서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은 저만이 아닌 것 같죠..?
홍콩에 새겨진 아픈 도장, 사스(SARS)
처음 홍콩에 이사 왔을 때 적응이 안됐던 것 중 하나인데,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어쩌다 재채기라도 한 번 하면 주위에서 엄청나게 눈총을 주는 거예요. 제 친구는 감기에 걸렸는데 지하철을 탔다가 기침 때문에 내릴 역도 아닌데 주변 눈치 때문에 내린 적도 있다고 해요. 알고 보니 2003년 사스의 경험으로 홍콩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근데 문화 차이란 참 묘한 것이, 그렇게 기침 한 번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꼭 버스 안에서 손톱들을 깎습니다… 한두 번 본 게 아니에요;; 위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ㅎㅎ)
홍콩에서 흔한 한 가지! 다 쓰러져 가는 낡은 건물 안에도 엘리베이터 옆이나 복도 벽면에 새니타이져 통이 있습니다. 산속 공중 화장실에도 손 안 대고 손을 씻을 수 있는 센서형 수도꼭지와 비누 디스펜서가 있고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는 anti-bacteria 처리가 되어 있는데, 그런데도 청소하시는 분이 한 시간에 한 번씩 살균 소독을 하십니다. 아파트 경비원 분들도 주요 업무가 살균 소독인 것처럼 보일 만큼 양손에 새니타이져 스프레이와 천 조각으로 무장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이며 바닥 카펫 등에 비장하게 칙칙 스프레이를 뿌리십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스가 없었다면 이번 코로나 때 홍콩은 훨씬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꼭꼭 잠가라 - 학교는 더 일찍, 더 오래!!
사스 이후에 방역 체계가 자리가 잘 잡혀서인지, 코로나바이러스 얘기가 나오자마자 홍콩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어요. 중국과의 국경도 최소한으로 열어 놓고, 검역과 방역 절차를 강화했어요. 마침 춘절 기간이라, 이를 연장해서 이민국, 국세청을 포함한 모든 관공서와 우체국을 몇 주간 몽땅 닫아 버렸죠. 도서관과 공공 체육 시설도 물론이고요. 아파트와 각종 건물에는 소독약 냄새가 더더욱 진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빡센 대처로 상황이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3월 중순경 홍콩에 제2의 확산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중국 본토가 아닌 유럽이나 미국에서 상황이 안 좋아지자 밀려 들어오는 유입 인구를 제대로 막지 못했기 때문이죠. 좁은 영토에 병상도 적은데 하루에 50-60명씩 확진자가 생기자 정부는 2월 초 이상으로 다시 단단히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기 시작합니다.
세계 최초로 입국자 전원 손목 밴드를 도입한 것도 이 때고요. 식당이나 커피숍에도 4인 이상 모이지 못하게 하고 테이블 간격 2m를 유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집 앞 스타벅스에 가면 앉을 테이블이 네다섯 개 밖에 없는 웃픈 상황도 생겼어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빨리 닫아버린 건 유초중고, 대학교까지 각종 학교입니다. 1월 말 춘절 휴일 시작 즈음에 이미 휴교를 선언하고, 그 뒤에도 한 달 뒤로, 또 두 달 뒤로 미루더니, 결국에는 “무기한 휴교”를 일찌감치 결정했어요. 홍콩과 자주 비교가 되곤 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끝까지 휴교를 하지 않고 버틴 것과는 참 다른 모습이죠.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휴교가 불가피하다는 확신이 신속한 결정으로 이어진 듯합니다.
홍콩 로컬 학부모들도 저 같은 외국인 부모와는 다른 마인드를 보이더라고요. 저는 3월, 4월, 계속 휴교가 미뤄지며 교육부 발표를 열심히 기다리고 어떻게든 빨리 개학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제가 아는 대부분의 홍콩인 부모들은 이미 2월 초에도 “빨리 끝나도 아마 5월까지는 갈 거야”라며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고 충고를 하더라고요. 사스를 이미 겪은 세대의 경우 이미 한 학기 이상 수업을 날려 먹고 그 이후에 이어진 장기간의 경제 침체를 겪었기 때문인지 훨씬 더 빠르게 미련을 버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리적 지원은 발 빠르게
학교 문을 미련 없이 닫아버린 정부지만, 그래도 재정적으로 지원책이 바로 마련되기는 했습니다. 지난해 시위가 격심해지면서 휴교를 했었는데, 그때 이뤄졌던 금전적 보상의 연장으로 이번에도 모든 학부형들에게 3,500 홍콩달러(약 55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지급했어요. (하지만 국제학교에 보내는 저희 가족의 경우 공중분해된 학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사실..ㅠㅠ)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홍콩 정부도 자영업자나 고용주를 위한 각종 지원 패키지도 가지고 나왔는데요, 여기에는 학교와 연관된 스쿨버스 회사들, 운전기사들, 또 급식 업체들의 부도를 막기 위한 보상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한국이나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부 기관부터 앞장서서 전면적 재택근무를 허용(한다기보다 반강제)하는 분위기고, 덕분에 평소 바빴던 부모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는 합니다. 도서관도 상당한 양의 E북을 풀어 집콕 시간을 조금이나마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발레나 태권도 학원도 자체적으로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서 아이들이 집에서라도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정서적 지원은 어디에?
하지만 지난해는 시위 때문에, 또 올해는 전염병으로 인해 침해된 학생들의 교육권에 대한 고려가 진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또 저처럼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정서적 웰빙이 걱정되기도 해요. 작년 시위 때, 아이들은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을 경험했고, 아직 몰라도 되는 “protester”나 “government”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어요. 왜 시위대는 가게를 부수는지, 왜 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겨누는지, 누가 나쁜 쪽인지 질문했죠. 올해도 아이들은 왜 계속 학교를 갈 수 없는지, 왜 디즈니랜드와 오션파크는 몇 달째 문을 닫았는지, 밖에서 이것저것 만지면 왜 엄마가 기겁을 하고 혼을 내는지, 혼란스러운 경험의 연속입니다.
홍콩 정부는 온라인 교육으로 학교 교육을 대체한다는 입장이지만, 온라인으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얻는 정서적, 사회적 배움의 환경을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전 세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또 마땅한 대안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지만, 이유도 잘 모르면서 집에 갇혀서 컴퓨터 화면으로 선생님 얼굴을 보는 것이 무척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에요.
지금 이 곳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놀이터나 공원도 모두 닫았는데요, 이 광경이 어린이들에게는 참 충격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네를 둘둘 말아 끈으로 감아 놓고, 미끄럼틀에 판자를 덧대 놓고, 공사판에 쓰이는 콘을 이곳저곳에 놓고 테이프로 감아놓는 등 범죄 현장이 따로 없습니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놀이터가 폐쇄되며 현수막만 하나 걸어 놓으니 아이들이 모두 무시하고 놀았다고 하니, 아마 이렇게 해야 실제로 폐쇄의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지나가며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아이들의 눈으로 한 번 의사소통을 해 주면 참 좋을 텐데요.
심지어 얼마 전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을 테스트한다고 부모와 억지로 떨어뜨려서 격리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었다고 해요. 실용적 효과 측면에서 보면 필요한 조치였겠지만 해당 아이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기억이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요.
개별 학교 차원의 대응
정책적, 사회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정서적 지원은 부족하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으려고 선생님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저희 아이 학교에서는 얼마 전 학교 설립자가 직접 닫혀 있는 학교에 가서 교실 안도 들여다보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도 보여 주는 등 영상을 보내 주셨어요. “너희가 지난번 꾸몄던 정원이야. 어서 와서 다시 물을 주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너희가 없으니 체육관도 너무 조용하다.” “너희가 잘 놀던 놀이터 옆에 새로 화분을 심었단다.” 등 따뜻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죠.
집에서 매일 놀아서 마냥 신났던 저희 아이도 그 영상을 보고 나니 학교가 많이 가고 싶었는지 여러 번 돌려 보면서 언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냐고 물었어요. 친구들도 보고 싶고 선생님들도 보고 싶다고요.
또, 지난해 시위 때도 그렇고 이번 사태 때도, 비상 상황 시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법에 대한 문서를 학부모끼리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고, 문제가 생기면 부모와 교사가 도와줄 것이라는 것, 너는 언제나 안전하고 건강할 것이라는 점 등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요즘 확진자 수가 많이 줄면서 개학에 대한 논의를 조금씩 시작한 홍콩인데요, 처음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나온 발언을 보았습니다. 고학년부터 순차적으로 개학을 하자는 논의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가 “학생들의 정서를 고려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전 학년이’ 함께 등교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고 해요. 이런 배려, 괜찮지 않나요? (결국은 순차적 개학으로 결정이 나기는 했지만요.)
극복은 개인의 몫?
전염병을 피해 가기 너무나 불리한 조건인데도 꾸역꾸역 지역사회 감염을 막아내고 있는 홍콩의 사례를 보면, 결국 개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홍콩에서 가장 좋은 점은 모두가 마스크가 필수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사스 이후로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알아서 마스크를 쓰는 분위기라서, 이 정도로 강력한 전염병이 돌면 정말 백 프로, 모두 씁니다. 돌쟁이들도 씁니다. (모두가 쓰니 아기들도 따라서 쓰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 쓰려는 아기들은 부모가 아예 안 데리고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개인위생”의 중요성을 홍콩 사람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는 거죠.
다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 놀이터도, 도서관도, 수영장도, 바닷가도 모두 접근 금지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는 지금의 모습을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기억할까요? 소셜 디스턴싱의 본질상 아이들의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부모가 떠맡고 있는데, 앞으로 또 다른 전염병의 시대가 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무거운 의문이 드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