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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02. 2021

국뽕에는 이유가 있다

의료는 한국이 최고! 더불어 풀어 보는 미국 출산 경험담

내 조국이다 보니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이 좋다. 무지막지하게 트렌드에 민감해서 갈 때마다 확확 달라지는 거리 풍경도 신기하고, 외국에서 맛있다는 레스토랑이며 디저트 집 귀신같이 들여오는 극성도 밉지 않으며, 각종 공구와 구매대행이 발달하여 귀국할 때 도무지 사갈 선물이 없는 것도 그저 감탄스럽다. 10여 년 전 결혼과 함께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외국에서 사람들이 출신 국가를 물으면 조심스레 "사우스"를 붙여 가며 코리아라고 답했고, 잘 아는지 몰라 조심스레 상대의 반응을 살폈었다. 지금은 그런 거 없다. BTS며 블랙핑크며, 저 어여쁘고 세련된 젊은이들이 정말 한국인인지 새삼 감동할 뿐. (리사는 미안)


그런데 다소 감상적일 수 있는 국뽕의 영역에도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의료". 정말 한국의 의료는 짱이다. 세계 최고다. 다른 외국은 자세하게까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경험한 의료 시스템으로는 그렇다.



미국에선 이런 말이 있다. 당장 피 흘리며 죽어가더라도 의식만 있으면 앰뷸런스는 타지 마라. 당신에게 최소 10만 불이 청구될 것이니. 그만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하나하나 엄청난 비용이 든다. 미국에서 알던 분도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양수가 터졌는데, 그 몸으로 가방을 싸서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우리도 임신과 출산 비용 때문에 꽤나 골치가 아팠었다. 미국에 가자마자 가난한 유학생 부부였던 우리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의료보험부터 싼 걸로 바꿨었다. 소정의 금액만 내면 보험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돈이 많이 드는 혜택은 받을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임신과 출산. 하지만 싼 보험에 가입하는 순간에도 난 몰랐다. 이미 내 뱃속에는 꼬물거리는 아이가 생겼다는 걸. 뒤늦게 여러 보험 회사에 전화해 가며 가입 여부를 물었지만, 다들 같은 걸 물었다. "혹시 임신의 가능성이 있나요?" "네, 그래서 더더욱 보험이 필요한데요." "죄송하지만 임신하셨으면 저희 보험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네..? 그래서 필요하다니깐요!)


다행히 당시 캘리포니아주에서 제공하던 저소득층 대상의 출산 비용 혜택이 있어 (폐지되기 직전에) 막차를 탈 수 있었다. 그나마도 임신 중의 검사에는 적용이 되지 않아 현금박치기(?)를 했다. 내가 당시에 비교적 젊었고 임신 기간 내내 별다른 문제없이 넘어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찌어찌 비용 걱정 없이 아기를 낳았다. 나중에 청구서를 보고야 알았지만, 출산 직후 몽롱한 상태에서 받아먹은 약 한 알 한 알에도 따로 가격이 매겨져 합산되었다. 한국 친구가 끓여다준 미역국을 먹느라 옆에 놔두고 먹지 않은 차가운 칠면조 샌드위치에도 전혀 싸지 않은 금액이 붙어 있었다. (그렇다, 미국에서는 출산 직후 얼음 위에 앉아 식힌(?) 후 찬물로 샤워를 하라고 권하며, 산후조리 음식으로 콜드 샌드위치를 주신다. 그대로 따랐다면 나는 30대 초반부터 산후풍으로 고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몇 주 후, 집으로 청구서가 날아들었고 나는 아직도 그 총액이 똑똑히 기억난다.


$17,000. 한화 1,900만 원 정도.


강조하지만 전혀 특별한 점 없는 자연 출산이었다. 응급 상황도 없었고, 아기도 건강했으며, 추가 비용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주 프로그램 덕에 이 돈을 내지 않을 수 있었지만. 뒤늦게 다른 사립 대학병원에서 출산한 친구와 얘기해보니 그 친구는 더 심했다. 3만 불 가까이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홍콩은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역마다 공립병원이 있다는 것이다. 립병원은 무료거나 아주 싸며, 합법적으로 홍콩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공립병원이 얼마나 싸냐 하면, 출산을 하고 나서 2박 3일 후 퇴원할 때 T-머니와 비슷한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 찍고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옥토퍼스에 충전할 수 있는 금액이 최대 15만 원가량이며, 대개 수만 원 정도만 넣어 놓고 다니는 걸 감안하면 정말 싼 듯하다.


예상했겠지만 공립은 대신 대기가 무진장 길다. 예약 시간을 받아서 간다 해도 한나절은 비워 두고 가야 일정에 차질이 없다. 영어도 아주 잘 통하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도 안내문 등은 모두 한자 아래에 영어로도 병기해 주기 때문에 감지덕지다. 그보다 무서운 점은 행여나 출산을 할 경우 무통주사를 맞는 것이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마취과 의사가 출산의 순간 병원에 있으면 맞고, 아니면 못 맞는다고 한다. 무통 헤븐을 맛본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공포다.


물론 사립병원에 가면 훨씬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의료진들 영어원어민 뺨치게 잘하고, 대기도 거의 없다. 하지만 가격이 진심으로 사악하다. 출산의 경우 한화로 2, 3천만 원이 기본이라고 하니 말이다.


치과도 마찬가지다.전에 한국에 갔을 때 아이가 이가 아프다고 해서 친정집 앞 치과에 갔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어금니 사이사이가 죄다 썩어서 충치 치료 6군데, 신경치료 두 군데를 해야 한단다. (난 마이쮸를 탓한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진정제로 달래 치료를 했는데, 수납할 때 간호사님이 정말 미안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신경치료는 비용이 좀 세서요.. 한 군데 만원인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요!! (사랑합니다)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다. 홍콩에서 신경 치료를 하려면 기둥뿌리를 뽑아 먹으니까. 섯 군데쯤 전화해보니 초현실적일만큼 흥미진진한 가격을 내놓는다. "한 군데에 70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150만 원 정도입니다." 진짜 진짜 싼 곳을 찾아냈는데, 겨우 30만 원밖에 안 한단다. 풋, 껌값이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 돈을 내 가며 치료를 받는 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살면 차라리 이를 다 뽑는 것이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보험 상품이 있어 직장을 통해 가입하는 경우도 많고, 외국인들은 잘 가지 않는 로컬 치과의 경우 이보다는 훨씬 싼 가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정보도 홍콩인 친구를 통해 알았는데, 그녀가 말해준 치과는 웹사이트도 없고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아 난 아마 평생 여기 살아도 몰랐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국뽕에 취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미국인 친구가 맨날 한국 의료를 극찬했는데 (그녀는 특히 "쌤썽 메디컬 쎄너"의 단골이었다) 이제야 그녀에게 공감한다. 평생을 미국 의료 시스템 속에 있던 너는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너에게 이런 혜택을 허해준 나의 나라. 대한민국 짱이다.



전혀 관계없지만 덧붙이는 출산 썰.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하듯 우리 여자들은 출산 무용담을 하곤 한다. 이제까지 만난 각국 국적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경험을 얘기하면 모두가 항상 놀라곤 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나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경부가 4cm 열려 있어 무통주사도 금방 맞고 출산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었다. 그래서 나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간호사 선생님과 밀어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굉장히 씩씩한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질러대는 "푸시! 푸시!" 기합을 받으며 한참 밀어내다보니, 옆에서 다른 간호사가 말한다. 이제 아기 머리가 보인다고.


그때, 흑인 간호사님이 밖에 나가더니 뭔가 가지고 들어오셨다. 아니, 끌고 오셨다. 정신없는 와중에 보니 그것은 세워놓는 거울. 내 다리 아래쪽에 놓는 걸 보고 내가 뭐냐고 묻자 아기가 나오는 걸 거울로 보면서 힘을 주란다. 왓?! 괜찮은데? 내가 사양하자 그분께서는 이렇게 소리치셨다.


This is a once-in-a-lifetime opportunity! Watch your baby coming out!
(일생일대의 기회예요! 아기가 나오는 걸 보란 말이에요!)


기세에 눌려 나는 고분고분 거울을 바라보며 아기를 낳았다. 거울에 모든 것이 비쳤다. 힘을 줄 때마다 아기 머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 그리고 아기의 젖어 있는 까만 곱슬머리까지도.


음.. 정말 나뿐인 건가요, 이런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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