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길은 명랑했다.
"너처럼 아이 돌봐줄 사람이 이렇게
첫 아이가 돌 즈음, 함께 일했던 선배가 찾아와 한 말이다
아이를 안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커피를 홀짝대는 내가 언니는 딱해 보였나 보다.
아이가 돌이 됐다니 다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게 웬일,
하루 24시간 껌딱지처럼 붙어사는 돌쟁이 얼굴을 보며,
미혼인 선배는 비혼을 굳게 다짐하는 듯 보였다.
<베이비 위스퍼>와 <삐뽀삐뽀 119>를 참고서 삼아 독박 육아에 몰입했던 나,
매일 밤 아이가 잠들면 살금살금 인터넷 육아 카페를 들락거리던 나,
치발기, 빨대 컵, 공룡 모양 이유식 숟가락, 희한한 모양의 턱받이와 아기 욕조까지
아이를 번듯하게 키우려면 없어서는 안 돼 보였던 각종 신종 육아용품을 사기 바빴다.
불안했다. 염려됐다. 내가 부족해 아이를 잘못 키울까 봐.
육아용품과 관련한 자격증이 있다면 아마 최단 속도로
가장 높은 레벨의 자격증을 땄을 거다.
누가 모성을 아름답고 위대하다 했나?
나에게 모성은 불안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돈 쓸 궁리를 하는 욕망의 구렁텅이였다.
돈을 벌고 다시 일하겠다 맘먹고 무작정 구인 광고를 살폈다. 방송, 출판 관련 일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프리랜서로 출판 기획할 사람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사무실이라는
모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아기 띠에 아이를 안고 갔다.
물론 사정을 미리 얘기했고 다행히 이해한다는
답변을 듣고 한 일이다.
어쩌면 이해심이 바다와 같은 그곳에서
꿈같은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어린이 위인전을 기획 중이라는
대표의 말에 따라 자료를 찾고 샘플 기획안을 만들어 보냈다.
기획료에 대해서는 한 마디 물음도 없이 나는 어쩌면 그리도 노예처럼 아이디어를 먹기 좋게 구성까지 해서 가져다 바쳤나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창의적인 생각이란 걸 하고 싶었나,
뭔가 만들어 낼 때 그 이상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나 싶다.
기획료는 고사하고 교통비 한 푼 받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사무실행을 그만뒀다.
독박 육아에서 잠깐 숨통을 텄던 3개월,
돌아보니 다 추억이다.
아이를 베이비시터 이모님에게 맡기고 홀로 걷는 길에서
후두두 떨어지던 분홍 벚꽃이 고왔다.
기저귀나 물티슈 이유식으로 빵빵하게 배불렀던 가방에
지갑과 책 한 권만 들고 살랑살랑 걸었던
그 길은 명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