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레 놀이
저녁 일곱 시가 넘어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수 있었다.
아무리 퇴근을 서둘러도 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가고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엄마 오기만 기다렸을 아이를 생각하면
맘이 무거웠다.
두 돌 안 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 아장아장 걷기 좋은 봄날이 그냥 지나갔다.
집에 올 때는 아이가 좀 피곤하기도 했지만
나 또한 지쳐 늘 유모차를 이용했다.
걸음마도 늦은 편인 데다 한창 걸을 시기에 어린이집만 맴돌아선지 아이는
유난히 느릿느릿 걸었다.
여느 날처럼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캄캄한 놀이터에 아들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모레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만하고 집에 가자 말려야 할 엄마는 도리어
아이 손등에 모레를 모아주며 함께 놀고 있었다.
저녁 먹고 씻고 자고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이 나의 평화다.
밤중에 저렇게 태평하게 놀고 있는 모자는
당최 무슨 생각일까 하는데,
아이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아파트 단지를 말하자 자기도 같은 데 산단다. 우연한 만남 치고 공통점이 많다.
피곤은 잠시 달아나고 또래를 키우는
엄마 대 엄마로 다정해진다.
상우 엄마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아들도 모레 놀이를 하고 싶은지 유모차에서
자꾸 엉덩이를 들썩인다.
잠깐이라도 같이 놀면 좋겠다는
상우 엄마 말에 유모차 버클을 풀었다.
모레를 만질까 말까 멈칫하더니
신나게 땅을 파며 논다. 깔깔대며 웃는다.
물에 젖은 깃털처럼 축 처져 있던 아들이
팔딱팔딱 뛰는 걸 보니,
아이는 저렇게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을 관두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지….
체념하려는 데,
상우 엄마가 내일도 이 시간쯤 놀이터 오면
같이 놀자 한다.
우리 집만큼이나 아빠의 퇴근이 늦은
육아 독립군이 분명한 상우 엄마,
그녀를 만난 날 아들의 손에 내가 처음으로 뿌려준 모레의 감촉이 생생하다.
끈적이지 않으면서 착 착 손에 감기는 모레, 따스함.
희미한 가로등에 아이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놀이터,
마음에 환한 등불을 켜니
밤중의 괴괴함이 다 사라진다.
다정한 상우 엄마를 그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