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멱살을 쥔 조급함에 대하여
지금이 행복하냐 물으면
이미 대답도 하기 전에, 지금 행복하자 하면 미래는 어쩌고? 라고 인상을 찌푸리는
그에게 '지금'은 없다.
지금을 담보주어 미래를 위하는 것도 아주 부당한 생각은 아니고, 이해할만 하지만
누구에게도 미래가 무어냐 물으면, 그 실체가 없다.
하지만 미래가 너무 무서워 현재를 끌어다 막고 있는 것이라 하면,
그 말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래가 두려워 울고 있는 당신의 표정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나는 그 이상으로 슬퍼질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제 즈음, 학생 시절에 봤었던가
가물가물한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글이 문득 수 십년만에 생각이 났다.
1974년도에 발간한 윤오영 선생의 수필이다.
윤오영 선생의 '글 맛'도 대단한데다, 길이도 매우 짧은 편이라 상당히 흡입력 있게 읽히는 글이다.
(※ 추신: 제목에서 방망이란, 빨래의 주름을 펴기 위해 두드리는 방망이. 즉 홍두께를 의미한다. 층간 소음에 민감한 시대의 변화 때문에, 수 십년 전부터 사람들은 구경도 못해 볼 물건이다.)
(아래는 그 전문)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拯九暴)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직역: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어 들고, 유유히 남산을 바라본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擣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직역:그대를 위하여 가을밤에 다듬이질 소리를 울리네)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글이 쓰인 1970년대는 산업화 시기였다.
이 당시 윤오영 선생이 펜을 들어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었던 시대적 메시지는 '장인정신에 대한 예찬이자 그리움'이었다.
하지만 2025년 이 글을 다시금 읽으며 내게 보였던 것은
'조급함에게 멱살 잡힌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작 중 주인공은 제 시간에 맞춰 지금 기차를 타도 좋지만, 다음차가 있었다.
제 시간에 맞춰 타는 것이 아무런 흠도 아니고 되려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차를 타면 분명 시간은 늦어진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그 시간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고, 티끌도 채 되지 않으나,
급하게 차를 탔었다면
아내가 감탄할 만큼 결이 곱고 무게 중심이 완벽한 물건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완벽한 물건이란 것을 넘어
(사실 40년의 세월 동안 이미 방망이는 쓸모도 없어졌다.),
동대문 추녀 끝의 흰 구름(떠오른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깊이라는 생각)
노인의 여유로운 뒷모습(자신의 경솔함과 조급함을 뉘우치며 얻은 인격적 성숙)
40년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 삶의 태도였을 것이다.
나에게 혹은 당신도 마음 속의 기차표는 항상 존재한다.
그것은 언제든 마음 속에서 만들어지고 지키려 하여 조급해지는 것 이지만,
항상 나 자신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조급함은 인생이 단단한 노인을 외고집의 불친절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런 나의 불안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손님의 재촉과 분노(투사)에 휘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라며 그 불안을 튕겨내지 않고 묵묵히 소화해낸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노인은 완벽한 치료자의 은유다. 내담자가 거친 감정을 쏟아낼 때, 치료자는 함께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노인의 '고집'은 아집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경계 설정이자 버텨줌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익은 밥을 내놓는 것보다, 욕을 먹더라도 뜸이 든 밥을 먹이는 것이 진정한 배려임을.
티끌이 된 30분, 영원이 된 구름
결국 나는 차를 놓쳤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차를 놓쳐버린 그 멈춤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동대문 추녀 끝에 걸린 흰 구름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업을 수행하는 노인의 거룩한 뒷모습을 마주한다.
40년이 흐른 뒤, 작가는 회상한다. 그때 차를 놓쳐서 지체된 시간은 이제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티끌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 티끌 같은 시간을 지불하고 얻은 노인의 장인 정신과 구름의 여유는 40년을 넘어 평생을 지탱하는 내면의 자산이 되었다.
만약 그가 기어이 노인을 닦달해 그 차를 탔다면 어땠을까? 그는 30분을 벌었겠지만, 평생 노인을 불친절한 장사치로만 기억했을 것이고, 거칠게 깎인 방망이처럼 그의 마음도 뾰족하게 남았을 것이다. 그는 차를 놓친 게 아니라, 진실과 마주친 것이었다.
다음 기차는 언제나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긴다. 효율과 속도가 미덕인 세상에서 신중함은 죄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 타도 좋지만, 다음 차가 있다."
다음 차를 타면 조금 늦을 것이다. 하지만 그 늦어짐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내 옆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하늘의 구름을 보고, 내 손에 쥐어진 물건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급하게 탄 기차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들.
인생을 회고했을 때, 남겨진 굵은 선들은 제 시간의 기차를 놓쳐서 내려놓을 수 있었던
조급함에 빼앗기지 않은 시각이 아닐까.
조급함을 내려놓는 경험이 아니었다면,
그 깊이는 40년을 넘는 세월에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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