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화적 접근!-
"나의 봄은 황금처럼 빛날까?
다가오는 날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 푸쉬킨 <예브게니 오네긴> -
시계제로!
한반도 주변 상황이 심상치 않다. 시계제로다.
미-중의 경쟁은 외줄 타듯 위태롭고,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주제를 빨아들인다. 일본의 재무장은 당연해지고, 북한의 핵은 견고해지는 것 같다.
서로를 향한 경고는 사나워지고 이는 단순한 언어적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급기야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은 신 냉전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혹자는 130여 년 전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사의 데자뷔를 떠올린다.
참으로 한반도는 고단하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미국, 가장 인구 많은 중국, 가장 돈 많다는 일본,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러시아에 둘러 쌓인 우리의 지정학적 운명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학자들은 이런 한반도를 “지정학적 단층선”에 놓여있다고 한다. 가히 불의 고리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한 능동적인 카드가 없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이론가들이 백가쟁명식 해법을 이야기하지만 “어떤 병에 수많은 치료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 병이 불치병이라는 것을 반증한다”라고 한 러시아의 작가 체홉의 말이 생각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단층선이 흔들려 폭발하지 않도록 견고하게 지탱해 줄 법을 찾아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지정학적 행운’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대륙과 해양으로 나갈 수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가장 거대한 시장을 곁에 둔 유라시아의 출발지 한반도의 지경학은 얼마나 큰 가능성인가?
그 해법 중 하나를 러시아가 쥐고 있지 않은가?
혹시 그동안 우리의 러시아 접근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닌가?
주변의 거인들을 상대하려면, 내가 거인이 되던가, 아니면 지혜롭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야 한다.
방법 1. 지정학: “지렛대”
사실상 수교 이전부터 러시아(당시 소련)는 우리에게 ”지정학적” 문제였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방정책에 이은 수교 초기 10년 동안 러시아는 우리에게 “지정학적” 중요성이 큰 나라였다. 우리에게 러시아는 분단의 책임국이며, 동시에 분단 문제를 풀어줄 키 맨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를 주로 “북한 문제 해법”으로 만 바라본 근시안적 대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관계는 안보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이 지렛대로 북한을 들어 올리기 원하지만 그들의 “한반도 정책”은 남과 북 양측을 동시에 가늠하고 있다. 우리가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하는 동안 러시아의 지렛대는 북한 쪽으로 이동해 버린다.
러시아 지렛대는 한반도 주변의 큰 돌을 움직이는데 유용하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지정학적 단층선에 있는 터키의 이른바 “헷징(hedging) 전략”은 지혜로워 보인다. 터키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 “양다리 정책”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지정학적 ‘쇼당’(show down)으로 바꾸지 않았던가?
국제 정치에서 '전략적 동맹'이 때로 '전략적 인질'을 의미할 때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방법 2. 지경학: “힘 점”
루마니아 출신 전략전문가인 루트왁의 “지정학에서 지경학”으로 주장 이후 국가 간의 경쟁이 경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 연대” 세력과 “다극체제 경제협력”간의 대립이라는 “지경학적 분열”이 진행 중이다.
지정학이 ‘압력’에 의한 관계라면 지경학은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효과적인 지정학은 성공적인 지경학을 낳는다. “정치란 경제의 집중된 표현”이라는 레닌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현재 러시아와의 지경학에서 우리 정책은 몇 점인가?
우리도 한때 러시아와의 “지경학적” 문제에 집중한 적이 있었다. 마치 우리는 러시아의 풍요로운 자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고, 러시아는 우리의 안전한 시장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러시아는 유럽을 우회하는 경제 플랫폼인 유라시아 지경학을 추구하고 있다.
“자원착취를 허용하는 신 식민지 체제 같은 진영 논리는 과거로 사라질 것”이라는 러시아 지경학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장관급 ‘북방경제협력 위원회’는 폐지되었고, 그동안 최고위급 관료들이 참여하던 정부차원의 ‘극동 경제 포럼’은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1]
러시아와의 정책에 사용할 지렛대의 “힘 점”을 잃었다.
방법 3. 지문화: “받침돌”
무엇보다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받침돌”이 준비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모든 정책의 제1열에 문화가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문화는 ‘뒤풀이’ 이지만, 러시아에서 문화는 전통적으로 ‘아방가르드’이다.
그들은 문화로 공감되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화부 자체가 없는 미국의 문화정책은 개별적이고 산발적이지만, 세계 최초로 “문화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러시아의 문화정책은 얼마나 중요한가? 러시아는 문화를 통해야만 지정학과 지경학에 도달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진실이 문화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지길 희망”한다는 푸틴의 말은 시사적이다. 흔히 푸틴의 두뇌라는 알렉산더 두긴의 “신 유라시아주의” 시작 역시 러시아 문화를 대체하고 있는 “안티 러시아”에 대한 ‘문명 전투’로 읽혀진다.
실타래처럼 얽힌 러시아와의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인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확실하고도 창의적인 해법의 시작은 “문화”다.
지문화적 전략에는 힘과 숫자에 눈먼 지정학과 지경학이 보지 못하는 패러다임이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우선순위의 해답은 지문화적 접근이다.
정치와 경제는 방향이고 문화는 길이다. 길을 잃으면 방향이 고달프다.
기도
혹시, 우리의 대외정책이 “중국과 러시아의 몰락은 필연적이며, 그 빈 공백을 미국과의 연대를 통한 한국이 채울 것”이라는 미국의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의 주장예 따르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의 예언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리드먼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한반도 주변 지정학적 판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만일 지정학적 단층이 폭발한다면 그의 예언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된다.
체홉이 말한 “불치병” 사태가 한반도에 해당되지 않기를, “다가오는 날에 우리 아이들에게 황금처럼 빛나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나의 밤 기도는 길고, 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므로 제발, 러시아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 말자!
그러므로 제발, 러시아와 ‘소통’하자, ‘소등’ 하지 말고…
[1] 2022년 극동경제 포럼에는 전쟁의 와중에서 68개국 7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특히 중국-인도-베트남-아세안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유라시아 경제 축의 확실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 나라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올해도 우린 그 길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