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 아이폰7을 통해 애플을 바라보다
이번 디자이너 모놀로그는 번외 편으로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7을 통해 예술가적 기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산업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사용자 편의적이고 객체지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발자 중심적이고 주체지향적인 기업들의 경우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플은, 자기중심적 태도로 수많은 팬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요소는 제거된다.
또, 수많은 선택지를 소비자에게 주고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커스텀화(customize)할 수 있도록 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의 예를 보면(논란이 되고 있는 안전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설정창에 정말 사용자가 이런 기능까지 인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기능들이 들어가 있다. 이들을 활성화시키거나 제거함으로써 사용자는 자신에게 맞춰진 휴대폰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 이러한 과정이 귀찮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인터페이스 역시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은 이 사용자 배려라는 부분에 극도로 집중하여 이러한 복잡함이 편리함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애플이라는 기업은 상당히 제작자 중심적이다.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던져놓고, 사용자가 학습을 통해 익숙해지게 만드는 방법을 택한다. 물론 이러한 인터랙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설게를 통해 사용자가 정말 편리하게 느낄만한 인터랙션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비자에 대한 태도를 디자인의 성향으로 보면 디자이너(designer)와 디자이니스트(designist)에 대응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용자와 소비자를 철저하게 고려하고 배려하는 디자인을 결과물로 내고자하는 디자이너와, 예술적 결과물로서 디자인 결과물에 자신의 영감과 색을 강하게 입히는 디자이니스트의 차이를 생각해봤을 때 애플은 디자이니스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애플의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와 마크 뉴슨(Marc Newson)은 공히 뚜렷한 감성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들이다. 조너선 아이브의 경우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편이고, 마크 뉴슨은 곡선적이고 유기체적인 형태와 대비가 특징적인 디자이너이다. 지난 4편에서 소개한 필립 스탁(Philipe Starck)과 마찬가지로, 이들 '디자이니스트'들은 디자인에서의 뚜렷한 지향성을 통해 예술적인 미적 감성을 제시하고 이들의 감성에 동의하는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소비자 지향적인 디자인의 특성에서 벗어나, 주관적이고 예술 지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폰 6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호불호가 갈리는 '절연테이프' 디자인은 마크 뉴슨의 작품이다. 마크 뉴슨의 다른 디자인을 보면, 그 두꺼운 선 형태의 조형이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이는 마크 뉴슨의 낙관과도 같고, 상징과도 같은 조형인 것이다.
조너선 아이브의 경우는 iOS 7을 디자인하면서 비평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지만, 처음 iOS7이 나왔을 때 기존 디자인의 스큐오모피즘(Skeuomorphism) 관점을 탈피하면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OS는 계속 같은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애플은 "디지털 기기로서의 아이덴티티에 합일하는 UI"라고 말한다. 즉, 첨단 디지털 기기인 애플의 전자기기가 고전적이고 클래식한 UI를 갖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완결성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이다.
애플은 사용자 경험을 쫓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제안이 지난 몇 년간
대중의 기호에 정확하게 들어맞아왔던 것 뿐이다.
혹자는 애플이 변했다고 주장하지만, 애플은 적어도 2000년대 이후부터 일관적인 가치들을 추구해왔다. 완전성, 무결성, 미니멀리티 등이 그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디자인 외적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재적인 어플리케이션 시장 운영, CNC 가공을 선호하는 제작 공정, 알루미늄 소재의 활용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사용자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제작자 중심적인 태도로, 폐쇄적이고, 독단적이며, 비용적으로 비효율적이라서 높은 시장 가격을 형성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만 동시에 이러한 가치를 쫓는 사람들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기업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아이폰7 역시도 애플의 지난 행보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완전성과 무결성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경계가 없는(Seamless) 형태를 더욱 강조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이어폰 3.5mm 잭을 없애 논란이 되었다. 홈버튼 역시 물리적인 버튼이 아닌 터치식 버튼(Force touch)으로 적용하였다.
이 흐름은 위의 iOS7 때의 변화와 판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흡사하다. 점차로 고전적인 하드웨어 부분들을 없애가는 형국이다. 무선 활용을 강조하고 버튼 역시 물리적인 것에서 터치식으로 바꿔가면서 디지털 기기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가는 것이다. 아마도 이후의 아이폰은 라이트닝 케이블과 측면 버튼들 마저도 없애려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아이맥 G3 시리즈의 후면 손잡이에서 보여줬듯이, 일말의 하드웨어 요소는 남기려 할 수도 있다. 이는 애플워치의 '용두' 부분에서도 보여지는 요소이다.
어쨌거나 애플의 행보는 일관적으로, 매우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길을 걷고 있다. 1990년대 소니가 디지털 장인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기업이었다면 애플은 예술가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완성도 높은 품질과 고부가가치 전략을 통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때문에 애플이 만들어가는 예술적 기업의 행보가 한편으로는 신선하고 반가우면서도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소니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점에 내놓던 제품들은 가히 작품이라 부를만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후퇴할 수 밖에 없어진 것은 결국 소비자와 사용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애플이 이제까지처럼 독선적인 정책으로 높은 품질과 뛰어난 감성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은 환영이지만, 어쨌든 기업은 완벽한 예술가는 될 수 없다. 바라건대 특색있고 철학적인 기업이 일시적인 성공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애플이 조금만 자신의 색깔을 조절하면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