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좋은 디자인은 오히려 비용을 절약한다
일반적으로 디자인된 제품에 대한 인식은 '비싸다'인 경우가 많다. 디자인 소품이라고 하면 프리미엄을 붙여서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일정 부분 자연스러운 부분도 있다. 좀 더 많은 생각과 배려 등을 통해서 더 사용하기 좋은 제품을 만들어 냈다면 더 큰 부가가치를 지니므로 가격이 올라간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디자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인데, 이 목적이 '합리적인 가격'에 있다면 디자인은 이에 따라 합리적인 가격을 추구하는 제품을 제안하게 된다.
경험 많은 디자이너는 세심한 배려로 비용을 극명하게 낮출 수 있다.
엔초 마리(Enzo Mari)가 1971년도에 디자인한 Box Chair는 등받이와 밑받침, 그리고 규격화된 여섯 개의 봉으로 이뤄진 이 의자는 디자이너가 추구할 수 있는 비용적 효율성의 정석을 보여준다. 의자의 등받이와 받침에는 구멍이 반복적으로 뚫려 있는데, 이러한 구멍은 재료의 절약과 제품 무게의 감소를 의미한다. 봉은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산업적 형태* 중 하나인데, 게다가 규격이 일정하기 때문에 같은 금형에서 복제하여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봉의 길이는 서로 같기 때문에 생산 효율성은 더욱 높아진다.
봉이나 빔(beam) 등은 압출금형을 통해 뽑아서 생산할 수 있다. 금형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경제적이며, 길게 뽑아서 필요한 길이로 자르면 되기 때문에 생산도 용이하다.
의자의 밑밤침 안쪽은 빈 공간인데, 이 공간에 등받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때문에 제품을 분리하면 위의 그림과 같이 작은 패키지에 담을 수 있다. 패키지가 작다는 것은 포장의 효율성, 운반의 효율성, 보관의 효율성을 동시에 보장한다.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의자를 담을 수 있고, 한 번 운반할 때 훨씬 많은 의자를 옮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엔초 마리의 이 의자는 매우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지만 위에서 설명한 세심한 설계와 그 예술적 가치 때문에 MoMA(뉴욕 현대 미술관)에도 전시되어 있으며 현재는 도리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본적인 개념은 아주 경제적인 배려 속에서 시작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또, 2009년 다이슨 어워드에 Nicholas Riddle이라는 학생이 출품한 Prio는 종이로 만들어진 깁스인데, 종이의 구조를 디자인해 접을 수 있고 펼치면 튼튼하게 고정을 시켜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이 제품은 종이라는 소재 자체가 우선 경제적으로 저렴하며, 접을 수 있어 포장, 보관, 운반에 용이할 뿐 아니라 사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응급조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성과 사용성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 이러한 제품은 '적정기술'의 관점에서도 뛰어난 기능성을 제공하는 제품을 값싼 가격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제 3세계 국가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품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비싸지 않다.
오히려, 비싼 가격의 제품이 종종 디자인으로 인해 살 만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단순히 좋은 재질을 활용하거나 비싼 마감을 통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은 좋은 디자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정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뛰어난 영감이나 감성적 만족을 주는 것도 디자인의 하나의 기능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같은 상황이라면 더 적은 파트를 활용하고 더 적은 매커니즘을 통해서 경제적이면서도 비슷하거나 더 월등한 가치를 보여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며, 이러한 설계를 해냈을 때 디자이너로서의 기능적 만족감과 지적 쾌감 등을 정신적 보상으로 얻게 된다. 또, 디자이너 개인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경제적인 디자인은 디자인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제공하며, 이에 따라 디자인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비싼 가격의 제품을 장식하는 '장식 전문가'여서는 안 된다. 디자인이 비싸다는 인식은 이러한 '장식적 디자인'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데에서 기인한다. 값비싼 제품에 디자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일종의 면죄부를 얻으려하는 것인데, 이것이 반복되면서 디자인은 종종 더 비싸게 팔아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한 수단 쯤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디자인은 '계획'이지 '장식'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제품이 기능상 1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판매될 수 밖에 없다고 할 때, 디자인은 이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부가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가격을 낮추면서도 유사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제시할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세탁기가 제공하는 액티브워시 기능이 이러한 것이 될 수 있다. 제공자의 입장에선 별 것 아니지만, 하나의 작은 요소가 들어감으로써 소비자는 큰 가치를 느끼고 제품의 가격에 관대해질 수 있다.
디자이너의 뇌는 경제적이어야 한다. 목적에 맞춰 생각하면서, 투자되는 비용과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를 끊임없이 대조해야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얻은 답에서 '디자인을 통해 가격이 높아졌다'가 아니라, '이렇게 세심하게 고려되었으니 이 정도 가격은 당연하다'라는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소비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가격이라는 요소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애매한, 주관적인 변수가 많은 요소이다. 그러나 적어도 구조나 마감에 있어서 결정을 내릴 때 경제적 효율성을 고려하면서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한 흔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클라시커가 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