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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Aug 29. 2016

"이 정도면 좋아하겠죠?"

#5. 디자인은 기능적 만족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렇게 많은 기능을 주는데 안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주로 사게 될까요?"

"음... 누구나요. 다들 좋다고 하던데요."

"..."



어떤 디자인 대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반응이 상당히 괜찮은 경우가 있다. 좋은 디자인이라며, 출시되면 꼭 사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주변의 반응이 소비로 꼭 이어지느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에는 비용적인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거나 소평가하여 고려하지만, 실제 출시된 제품을 구입하려 할 때는 비용이라는 부분이 우선순위로 고려되기 때문이다.




기능이 제공하는 효용성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소비자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 높은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외면받을 수 있다. 특히 단순히 기능적인 충족이라는 부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는 강한 자극이 있어야 한다.


디자인을 통해 기획된 제품이라면, 기능적 만족을 뛰어넘어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단순히 기능적인 만족만을 충족하고 있다면 아직 디자인이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즉, 디자인은 이성적 판단을 무너뜨리게 하는 '욕망'을 건드려야 한다. 지난 글에서 예를 들었던 필립 스탁이나, 애플 사의 스마트폰 같은 경우가 좋은 예이다. 이들은 기능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들이 디자인하고 만든 제품을 기능을 보고 사지 않는다. 가지고 싶은 욕구로 인해 구매한다. 비슷하거나 그보다 월등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제품이 있더라도 이들을 구매하게 되는 것은 소유하고픈 욕구를 자극하며, 그러한 소유가 물질적 비용 이상의 '가치'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가치'라는 말은 디자인과 발명을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는데, 이 때문에 기획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종종 이 기획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발명에 가까운 창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디자인을 통한 발명 역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면 목표로 삼아야 할 소비자의 욕망과 가치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빨대 (MUJI design award 2009)



일본의 무인양품(MUJI)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름 그대로가 의미하듯 최소의 가공과 절제미, 자연미 등이다. 무인양품에서 제품을 선호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그러한 무인양품의 소박하고 절제된 외관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자신의 핵심 가치로 삼고자 할 것이다.


위의 빨대는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이러한 가치를 매우 이상에 가깝게 보여준다. 무인양품이 주관한 2009년의 공모전에서 금상을 차지한 이 빨대 디자인은, 빨대(straw)가 짚이나 갈대 등을 대롱으로 활용하던 데에서 유래되었음에 착안하여 최소의 공정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빨대를 만들어냈다. 무인양품의 가치를 존중하는 소비자들이라면, 이 빨대가 기성 빨대에 비해 다소 비싸더라도 이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가치와 욕구를 자극받는 것이다.



비누 디스펜서 (Joseph Joseph)



액체비누를 분배해주는 조셉조셉(Joseph Joseph)의 이 디스펜서 역시 조금 비싸더라도 한번쯤 사보고 싶은 물건이다. 발랄하고 유쾌한 주방을 만드는 조셉조셉의 가치를 디자인으로 잘 반영하여 기능적으로 만족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만약 이 제품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비누를 분배한다는 기능적 만족만을 생각했다면 위 제품의 형태나 색감이 아닌, 기성 제품과 비슷한 매우 다른 형태의 제품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기성 제품에서 벗어나 이처럼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이 탄생한 것은 발랄하고 유쾌한 주방을 만들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디자인에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디자이너는 '소비자 가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소비자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직군은 많지 않다.



정리하면, 디자이너가 개인적인 미적 취향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소비자 가치를 무시하거나 제품이 기능하기 위한 단순한 하우징(housing)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렇게 완성된 디자인은 별다른 특색을 가지기가 어렵다. 또, 비록 제품의 효용성이 높아 관계자 사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지라도 소비자 시장에서는 결국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미 기능의 충족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단순히 기능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소비자의 이성이 마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제품에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매력을 줄 수 있는 직군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정서와 가치 등의 정성적인 개념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높은 사회성이 필요하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특정한 대상을 선호한다고 느꼈을 때, 그들이 호감을 갖도록 만드는 중심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분석해내려면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눈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산업 현장에서 디자인이 수행해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며, 디자인 외에 다른 직무에서는 해내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정량적인 지표 등으로 분석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전문성은 정교한 스케치나 복잡한 3D 그래픽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능적인 만족을 넘는 가치를 꿰뚫어보고 정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스케치나 그래픽 능력은 이를 표현하기 위한 기본기일 뿐이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세상을 만나고 촘촘하게 관찰해야 한다.



* 위의 언급이 스케치나 그래픽 능력 등의 기본기에 소홀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본기가 부족하면 표현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좋은 길을 찾고도 가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 당연히 기본기를 충실히 갖춰야 한다. 다만, 표현 능력에 몰입해 가치 중심적 태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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