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있는 상상의 나에게
서로 간의 사생활은 철저히 지켜주는 가깝고도 먼 사이인 말롸만씨가 내 핸드폰을 만지는 경우가 있다. os 및 앱들을 업데이트할 때이다. 핸드폰 속도가 느리던 빠르던 크게 차이를 모를뿐더러, 전화나 인터넷만 사용하면 된다는 주의라. 그런 내가 나는 불편하지 않지만, 말롸만씨는 그런 내가 불편한가 보다. 핸드폰을 이리 저리 터치하던 말롸만씨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 헐.. 1주일에 2km? 뿐이 안 걸었어?
- 무슨 말이야?
- 여기 봐봐. 건강 앱에 자기가 일주일 동안 얼마나 걸었는지 나오는데! 숨만 쉬고 산거야?
- 그래? 나 그 앱 사용도 안 했는데?
핸드폰 화면에 일주일 날짜와 거리 2km가 뚜렷이 적혀있다. 역시 나의 사생활은 핸드폰 때문에 보장되지 않는구나. 짐짓 시크한 척 돌아섰지만, 내가 하루에 500m 도 걷지 않았다는 수치적 결과물에 나도 놀랐다.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을 살 가치가 없다 생각하는 말롸만씨는 숫자가 못마땅한지 어떻게 일주일 동안 2km만 걸을 수 있냐며 계속 계속 놀란다. 나도 알고 있다고.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지. 근데 뭐 늘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는 않잖아? 핸드폰을 들고 다닐 때만 어플에 기록되는 거잖아?! 그리고 일주일이 아니고 하루 동안 아니야? 어플이 고장 났을지도 몰라!라고 작은 소리로 변명을 해본다.
말롸만씨는 마라톤, 골프, 자전거, 테니스 등 운동 마니아이다. 제일 싫어하는 건 소파에 누워있는 것. 아침 늦게까지 늦잠 자는 것. 한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숨쉬기만 겨우 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냐마는 나는 어떤 운동을 하든 딱 요가 매트 만큼만 움직일 수 있는 걸 택한다. 헬스장에 가도 러닝머신의 사각 벨트와 자전거 안장의 영역 안에서만 움직인다. 일을 할 때도 노트북 한대만 놓을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책을 읽을 때도 의자만큼의 범위만 있으면 된다. 딱 고만큼의 공간만 있으면 하루 종일 그 자리를 지킨다.
생각해보면 내가 움직임을 크게 했던 순간은 많지 않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겨우 탓을 해본다면 코로나고 아이들 방학이다라고 핑계를 대어 본다. 만약 코로나가 없었다고 해서 내가 잘 움직일까? 그것도 아니다.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망부석 같은 사람이다. 내가 가장 활동적으로 생활한 적은 20대이다. 그때는 그냥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곳을 다니고 싶었다. 남편처럼 무조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목적이 있어야 움직여지는 사람이다.
그런 나는 쉽게 사람들의 에너지에 치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롸만씨의 처방전은 늘 한결같다. 체력이 없기 때문이란다. 남편 말이 제일 듣기 싫고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동의하기 싫다. 무슨 심보인지. 그런 나를 잘하는 말롸만씨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해준다. 넌지시 '마녀 체력'이라는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몸이 먼저다' 책을 식탁 위에 올려 둔다. 책 읽는 거야 뭐. 나는 다양한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영역의 책을 읽으며 잠시 다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방구석을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운동 중에도 달리기를 하고자 마음을 먹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요조가 달리기를 한 후 먹는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맛있다고 했을 때, 뜨거운 여름날 숨이 콱콱 막히는 작렬하는 아스팔트를 볼 때, 필력은 체력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을 들을 때이다. 내 삶에 없는 달리기라는 것이 조금씩 스며들며 요만큼의 달리기를 다시 시도해 볼까? 마음을 움직여본다. 그전에 며칠 달리긴 했는데.. 그래도 운동을 한다면 달리기가 매력적이긴 한 거 같은데.. 나는 오늘 밤에도 누어서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는 분명 내일 아침에도 침대에 누워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