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 라라크루 수요질문 >
❓요즘 행복한 일이 있으셨나요?
그럼 무엇 때문에 행복했을까요?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아 당황한 질문이었습니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라고 행복을 정의할 때, 요즘 저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불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지만 기쁘지는 않습니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함을 넘어 에너지가 소진된 기분입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이 오겠구나... 싶습니다.
제 상태는 저희 집에 있는 귀면각을 닮았습니다. 아무 변화나 성장 없이 숨만 쉬고 있는 상태, 살아있지만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인이 이사 가며 버리듯이 떠넘기고 간 것이 불쌍하여 좋은 토분에 옮겨 심어주었지만 그 상태로 3년째 미동도 없습니다. 썩거나 시들지도 않았고 색깔의 변화도 없습니다. 그저, 살아만 있습니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시들었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사랑초를 보면서 느끼는 바도 없나 봅니다. 끊임없이 만세를 외치며 자손이 번성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만세 선인장이 부럽지도 않나 봅니다. 그저 하루하루 먼 산만 바라보며 살아만 있는 것이 답답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시는 짱짱합니다. 실수로라도 만지면 정신이 번쩍 나게 따끔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 귀찮지만 영혼은 예민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 얘기하는 것도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쓴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배를 곯는 것도 아니요 속 썩이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장성한 자식과 건실한 남편을 두고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요.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을 인간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기술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행복은 생존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인이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먹을 때와 대화할 때라고 하더군요.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늘 저와 함께 대화 나누고 식사를 함께하던 단 한 명의 부재가 뇌리를 스칩니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고 식사를 하고 웃고 떠들지만 늘 가슴 한구석이 헛헛한 이유... 선뜻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창밖만 쳐다보고 있는 귀면각 선인장처럼 내내 먼 하늘만 바라보는 이유...
그렇게라도 '행복 부재'의 원인을 찾아 이름을 붙여봅니다. 오래 침잠하지 않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