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공병여단 도하중대의 운전병으로 자대에 안착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구나. 신병 보호기간을 지나 동기와 외출을 두 번이나 나왔고, 무엇보다 엄마·아빠와 짧더라도 매일 통화를 하는 너를 보니 안정적인 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일과가 끝난 네가 "폰 받음"이라는 톡을 올리기가 무섭게 엄마·아빠는 경쟁적으로 너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많이 덥지는 않았는지 뻔하디 뻔한 질문에 별것 없는 대답을 너는 두 번에 걸쳐서 해야 하지. 너와의 통화가 끝나면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고 묻는단다. 간혹 엄마한테만 얘기한 내용을 듣게 되면, "아... 그 얘기는 못 들었는데..." 하면서 엄청나게 아쉬워하지.
형 때는 없던 일이다. 형과는 주말에나 가끔 통화를 하곤 했지. 그런데 너와는 매일 저녁 통화를 하고 있구나. 혹시, 엄마·아빠 때문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통화를 하는 거라면 언제든 말하라는 우리의 말에 너는 말했지.
"엄마·아빠와의 통화가 바깥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인걸."
아무리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얼마든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해도 세상과 단절된 곳에 있다는 것만큼은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었구나. 엄마아빠의 목소리라도 매일 들어야 자신이 아직 세상에서 잊히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일과 후 너와의 짧은 통화를 매일 기다릴 수밖에...
운전병이지만 운전만 하는 것은 아니라던 너는 군대 안의 콘텐츠가 아주 다양하다고 했다. 낙엽 쓸기, 쓰레기 줍기, 분리 수거장 청소, 창고 정리 등 잡다한 일을 꾸준히 시킨다지? 그럴 때마다 운전병들은 "저는 수송인데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얘기가 참 웃겼단다. 운전병이지만 운전 외의 것들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은 얼마 전 네게 온 손 편지에도 쓰여있더구나.
"운전에 대한 기대는 접었어. 그냥 운전할 줄 아는 인력 1이 됐어."
어쩌면 우리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원하는 일, 기대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그 외의 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며 사는지도.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고 자질구레해 보이는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겨우 한숨 돌리며 하고자 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것일지도.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 쓸모없고 귀찮으며 자잘한 일들을 하다 보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편하게, 원활하게, 즐겁게, 잘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루 종일 30분 수송부를 갔다 오고 나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엄마·아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의 여유와 조용함을 즐기기로 했다는 것이나, 몸 쓰는 것밖에 할 게 없지만 어떻게 해야 건설적으로 군 생활을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나, 제대 이후의 삶을 계획하다 보니 알아야 할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하는 것이나...
병사들이 쉬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어서 다양한 콘텐츠로 시간을 때우게 하는 군대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너구나.
이번 주에는 위병소에서 근무를 선다지? 여태 안 해본 새로운 콘텐츠를 경험해 보겠구나. 지금쯤 입속으로 되뇌고 있는 건 아닐까.
'수송인데요?'
일주일간의 위병소 근무가 끝나면 어느 날에는 맡은 바 운전하는 날도 올 테고 또 어느 날에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나기도 할 테지. 지치기도 하고 문득 즐겁기도 한 군대에서의 시간, 그 다채로운 콘텐츠를 차분히 끌어안고 성실히 기록하고 있는 네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