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곳이 최고의 부대다

< D - 472 >

by 늘봄유정

"내가 운전병이 아니라 공병으로 가는 꿈을 꿨어. 꿈은 반대겠지, 엄마?"

그때 꿈은 반대라고 강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해지는구나. 예지몽일 수도 있다는 엄마의 농담 때문에 너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은 아닐까... 엄마의 입방정을 자책하게 되는 날이구나.


'야라다이스'라고 불리는 수송교육연대에서의 5주 생활을 마치고 과연 어느 부대에 가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우리... '훈련병 중 10%는 전방이 아니라 수도권으로 간다더라, 지난 기수 훈련병들이 대부분 전방으로 갔으니 이번에는 수도권으로 갈 확률이 높다더라, 서울대생은 편안한 부대로 빼준다더라'라는 낭설에 기대어 부푼 꿈을 꾸었던 우리다. 2군단으로 배치되었을 때만 해도 군단 운전병인가 보다 했는데, '공병여단'의 '도하중대'라는 다소 낯설고 묵직한 기운이 몰려드는 이름의 자대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에 혼란스러웠다. 건설환경공학이라는 너의 전공이 반영되었는가도 싶었지. 대학입시에서만 전공 적합성을 보는 줄 알았는데 군대에서도 자대 분류에 전공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일까. 강 위에 도로를 건설하는 일이라니...


망연자실한 듯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전화를 받는 너였다.

처음 입대했을 때 휴대폰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 그때의 너로 돌아간 듯했단다. 덩달아 심란해진 엄마아빠였다. 아빠는 본인이 군인이던 시절에도 가장 피하고 싶던 보직이었을 정도로 힘든 병과가 공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고, 엄마는 밤새 검색을 했지.


검색을 하면 할수록 네게 힘을 실어주고 싶더라. 군대를 가보지 않은 엄마라서, 그곳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어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피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일 때문에 끙끙 앓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못 하겠다. 대신 피할 수 없으면 제대로 잘 버텨보자.


자신이 속한 부대가 가장 힘든 부대다.

에게는 지금 그곳이 더없이 힘든 곳으로 느껴질 거야. 훈련소가 편하다고 하니, 훈련소 조교로 남으면 안 되냐는 엄마아빠에게 너는 네 운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지. 훈련소도 널럴했고, 운전 훈련을 받던 후반기 훈련소는 천국이었기 때문에 군대가 잘 풀리는 것 같다며 네 운이 어떤 방향으로 너를 안내할지 궁금하다고 말이야.

네 운을 시험해 보고자 했던 마음은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견뎌내는 너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심란한 마음을 툭툭 털고 눈을 치켜뜨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너를 다시 마주하렴.


자신이 속한 부대가 가장 좋은 부대다.

모두가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지. 좋은 곳이란, 시간을 때우기에 지루하지는 않으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한 곳일 거야. 그런데... 그런 곳이 있을까? 엄마아빠가 농담처럼 네 형이 아주 편하고 수월한 군생활을 했다고 말하지만, 형도 나름의 고민과 고난이 있었겠지. 그럼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시간을 버텼겠지. 형이 어제 발끈하더라. 자기도 엄청 힘들었다고. 형에게 한참 미안했다.

몸도 마음도 편한, 세상이 있지도 않은 이상적인 시공간을 꿈꾸지 말자. 네가 앞으로 15개월 남짓 있게 되는 그곳이 최고의 부대로 기억되도록 너를 다독여보렴.



가장 힘들지만 가장 좋은 부대에 아들을 보낸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은, 국가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작전을 강행하여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지 말기를...

지킬 것은 지켜가며 훈련을 시키기를...

힘들고 지쳐 쓰러진 용사의 얼굴을 한 번만 제대로 봐주기를...


네 운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했지?

네 운은 막힘이 없다고, 어떤 역술가가 그랬대.

좋은 곳으로 갈 운이 아니라, 네가 가는 곳이 어디든 좋은 곳이 되는 운인 거란다.

마침내 넌, 좋은 부대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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