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질긴 놈을 만났다. 한두 달이면 해지고 뚫리기 일쑤였는데, 이번 고무장갑은 석 달이 넘도록 말짱하다. 구멍 나서 버리는 게 아니라 질려서 버리고 싶어졌으니 말 다했다. 문득 궁금했다. 석 달이 넘도록 짱짱한, 내구성이 뛰어난 고무장갑을 개발한 사원은 사장님에게 이쁨을 받았을까, 미움을 샀을까. 우수사원이 되어 상여금을 받았을까, 회사 이익에 방해가 됐다며 승진에서 누락됐을까. 소비자 불만이 접수될 정도로는 약하지 않으면서 회사 매출에 도움이 되는 고무장갑 이용 주기는 얼마일까. 어느 정도의 기간을 버티는 고무장갑을 만들어야 일 잘하는 직원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탁월한 결과물을 내는 걸까. 주변 눈치를 봐 가며 남들보다 너무 튀지 않게,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당히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물을 내는 걸까.
설거지하다 말고 엉뚱한 생각에 정신이 팔린 사이, 거짓말처럼 고무장갑 한쪽에 물이 새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