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원할 K사상을 기대하며
<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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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3. 2025
유난히 추운 겨울입니다. 새해지만 희망을 논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럴 땐 종교에라도 의지하면 위로가 될까 싶은데, 저는 무교입니다. 종교가 삶의 위로가 되어 준다거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되었습니다. 제 손을 잡고 울면서 교회에 가자고 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 마음이 멀어지곤 했습니다. 탈종교화는 저만 보이는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구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2023년 한국의 종교인 비율은 37%까지 떨어졌다고 하고 미국과 유럽도 지속적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종교와 철학의 절멸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K사상의 세계화를 논하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2 >라는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에 이끌려 겁도 없이 심오한 토론의 장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K드라마, K팝, K뷰티 같은 대중적인 내용을 기대했던 세속적인 저는 K사상이 가진 보편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석학들의 대화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 창작과 비평 >의 창간인이자 편집인인 백낙청 선생이 종교학자인 오강남 박사, 유교 연구자인 백민정 교수, 원불교 전도연 교무, 이보현 작가, 고명섭 기자와 대담한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천도교나 원불교 같은 우리나라 태생의 종교와 철학이 혼란하고 위태로운 이 시기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평화롭고 안온한 내일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입니다.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난 우리의 독창적인 종교이자 사상이며 이 셋을 관통하는 공통의 화두가 개벽이라고 합니다. 즉, 개벽사상이야말로 우리 한국 근현대 사상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후천개벽사상이란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대변혁을 의미합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원불교의 개교표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를 필두로 하는 물질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개인의 영성과 함께 세상을 변혁하는 정신의 개벽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자본의 공정한 분배,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생산을 고민해야 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정신의 공부, 개벽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책에서는 정신개벽을 이끌 수 있는 종교를 심층종교에서 찾습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내세를 중시하는 게 표층종교라면, 심층종교는 참된 자아를 찾고 깨달음을 얻는 것에 집중합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 믿는 종교가 아니라 현세에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종교라는 것입니다.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가르침, 다양한 수행방법, 타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은 태도, 절대적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 것, 끊임없는 의심을 허용하는 것,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가짐, 내세보다는 지금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현세 중심적 시각.' 책을 읽으며 찾아낸, 앞으로의 종교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이런 대부분의 특성을 한국의 근대 신종교이자 심층종교인 천도교, 원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들만을 비호하고 추앙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에 깃든 심층종교의 특징을 찾아내 모든 종교가 대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는 이런 대화를 '구원중심적인 접근'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리상으로 어떤 종교가 더 나은지를 따지지 말고 서로 협력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힘쓰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공과 원불교의 사은, 유교의 예치, 기독교의 사랑 같은 각 종교의 가르침에는 당대인의 깨달음을 촉구하는 개벽적인 것이 있다. -P219
모든 종교의 심층부에 담겨있는 '개벽사상'을 찾아내고 연결하는 일을 한국의 종교와 사상이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설레는 일입니다. 개벽사상이 세계가 직면한 불안과 공포, 위기를 이겨내는 사상적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꽤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합니다. "윤석열은 부처인가?"라는 소제목의 짧은 단락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신분이나 인격, 언행이 어떻든 그것을 어떤 진리의 화현으로 보라. 공경하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접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미워하면 안 된다는 것. 미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서, 그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어린아이를 위해서 사탕 달란다고 다 주면 안 되는 것처럼. 어떤 경우엔 그 사람을 위해 아주 강력하게 조치를 취하는 게 진짜 불공이고 공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71
2024년 11월 22일 출간한 책 속에서, 그때까지는 부처였던 그. "아무래도 모두가 부처는 부처"라고 말하면서도, 윤석열에게도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불공법이 뭐냐는 질문에는 원불교 교무님도 답을 내놓지 못하셨다는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