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나약한 부모를 깨우는 죽비다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5.11.14 )

( 라라크루에서는 금요일마다 바스락 작가님이 추천하는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문장]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었다.


[나의 문장]

부모가 힘든 세상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자식들로 인해 끊임없이 깨달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식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초조한 마음을 애써 숨길 때도 많지만, 그럴수록 심지는 굳어지고 삶에 대한 믿음도 커진다. 부부에게 자식은 나약한 인간을 깨우는 죽비였다.


[나의 이야기]

작은아들이 8박 9일의 나 홀로 여행을 마치고 무사 귀환했다. 군 생활 동안 모은 적금으로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여행이었다. 최고급 호텔 숙박에 전 일정 호텔 조식,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미쉐린 식당 코스요리까지. 아낌없이 자신을 위해 소비한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부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잔소리가 왜 없었겠는가마는, 우리와는 한참 다른, 아니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사는 그를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8개월 동안 군대도 보냈으면서 9일짜리 여행에 이렇게 걱정할 게 뭘까 싶다가도 낯선 나라에, 그것도 난생처음 혼자 가는 여행을 보내자니 여행 전부터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기껏 멀리까지 가서 허탕 치는 일 없이 구체적인 여행 일정은 세웠는지, 현지 물정에 관해 공부는 했는지를 조심스럽게 묻는 부모에게 아들은 "그냥 가는 거지 뭐~"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조심하라는 말에도 "당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라고 장난스럽게 답해 부모의 불안을 극대화했다.

여행 중, 자주 연락하라고 할 수 없어서 가끔 사진 한 장, 오늘 하루 무사했다는 문자 한 번만 달라고 했더니 정말 딱 그만큼만 연락이 왔다. 시차로 인해 새벽녘에 톡이 왔는데, 그 때문에 밤을 설쳐야 했지만 그래도 그걸 봐야 안심이 됐다.


당연히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의연하게 대처했던 이야기, 맛있게 먹었던 음식, 인상적이었던 곳을 딱 물어본 만큼만 풀어놓는데,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걱정은 이기적이라는 것을. 적당한 관심을 넘어서는 걱정은 상대를 옥죄고 운신의 폭을 좁힐 뿐이다.



얼마 전,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이 있다. 20대 청년이 치과 진료를 받고 20만 원을 결제하고 돌아갔는데 얼마 후 청년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우리 아이가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온 것 같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혼자 갔다고 보호자 동의도 없이 덤터기 씌운 거 아니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간호사는 20대 청년을 '아이'라고 지칭하는 어머니에게 적잖이 당황했다고 했다.


이 사연을 두고 나는 부모가 문제라고 했고, 큰아들은 자식이 문제라고 했다. 누가 문제였든, 우리에게는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얼마 전 일하다 허리를 다친 아들은 혼자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가 치료를 받고 어기적 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귀가를 했다. 며칠 일을 쉬는 게 어떻겠냐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죽을병 걸린 것도 아닌데 뭘"이라며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출근했다. 나는 병원에 전화해 주사 하나 놔주고 웬 돈이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따지지 않았다. 직장에 전화해 아이가 아프니 며칠 쉬겠다고 전화하지도 않았다. 이미 아들은 그의 삶을 살고 있고, 묵묵히 걷는 그 걸음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엄마에게 냉정하게 쓴소리를 할 아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늠름한 청년들이지만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았던 아들들. 그들은 부모의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나둘 해소해 주면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부모와 연결되었던 끈을 끊어내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래 주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소란스러워지려는 서로의 입을 막아주면서 자식을 지켜봐 주기만 하는 부모로 거듭나고 있다. 오늘도 배우고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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