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6.1.23 )
( 라라크루에서는 금요일마다 바스락 작가님이 추천하는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문장] ☞ <비행운> 벌레들/ 김애란
장판 위로 네모난 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는데, 그 사각형 안에서 뭔가 희미하게 출렁이고 있는 걸 발견해서였다. 그건 방바닥에 비친 아지랑이 그림자였다. 내 발 아래서 신비롭게 출렁이는 봄기운, 나는 잠시 충만해져 '아, 보이지 않은 것에도 그림자가 있구나' 감탄했다.
[나의 문장]
천일염의 간수를 빼려고 받쳐두었던 스테인리스 솥을 닦고 있는데, 솥 바깥쪽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소금이 만들어낸 구멍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구멍을 파낸 끝에 탈출에 성공한 죄수의 환희 같은 물줄기, 나는 숭고한 마음으로 '모두가 애쓰며 살고 있구나' 감복했다.
[나의 이야기]
오래전, 서산에 사시는 작은아버님이 좋은 소금이라고 천일염을 사 보내주신 적이 있다. 간수를 빼주어야 한다고 하셔서 포대 밑에 스테인리스 물솥을 받쳐 두었다. 한창 떡을 찌던 시절 쓰던 물솥이었는데, 용처 없이 나뒹굴다가 결국 간수를 품게 되었다.
3년이 지났을까, 간수도 다 빠졌을 테니 소금을 용기에 조금씩 덜어 놓을 요량으로 포대를 잡아 들었는데, 나일론 포대가 푸스슥 힘없이 으스러졌다. 집 나간 서방님을 기다리다 앉은자리에서 재가 되었다는 어느 여인네가 이랬을까? 소금과 포대 부스러기가 뒤엉켜 귀한 소금을 버리게 됐다. 소금과 포대를 수습하고 보니 바닥에 받쳐두었던 물솥이 보였다. 솥 바닥에 간수와 소금 결정이 담겨있었다. 딱딱한 결정 위로 뜨거운 물을 부어 녹기를 기다렸다. 다 녹은 물솥 내부의 모습은 처참했다. 군데군데 녹슬어 원래의 반짝반짝한 자태는 없이 거무튀튀해졌다. 지금까지 방치해 놓은 것이 심히 미안했다. 유배 보내졌다가 다시 복권되어 돌아온 신하를 맞이하듯 나름 정성을 쏟아가며 닦아주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스테인리스 물솥 한구석에 구멍이 뚫려 물이 줄줄 새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함과 서운함에 '소금 이 녀석'하며 소금을 째려보았다. 원망스러움에 뒤따른 감정은 '경외심'이었다. 소금의 염소성분이 스테인리스 표면의 산화크롬층을 파괴하여 구멍을 만들었다는 논리적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내게 보였던 것은 소금의 부단한 노력뿐이었다. 그저 짜디짠 소금일 뿐인데 어떤 지난한 노력으로 구멍을 만들어냈을까.
3년간 하루도 쉼 없이 파 내려갔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베란다에 빨래가 잔뜩 널렸거나 걷어졌거나, 옆에서 식물들이 죽고 새 식물들이 들어오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주인의 눈에 발각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파내려 간 구멍으로 '쇼생크 탈출' 한편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이소룡의 말이 떠오른다.
"천 가지 발차기를 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한 사람은 무섭다."
꾸준한 노력 끝에 따르는 압도적 전문성. 반론의 여지가 없다.
나는 평생 무엇을 그렇게 무던히, 묵묵히 해본 적이 있었던가. 갖은 핑계, 할 수 없는 이유를 백만 가지 찾아가며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던가. 혹은 이것저것 기웃거리느라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토론'만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 꾸준히 삶을 글로 남기는 일이 내게는 '한 번의 발차기'이고 '큰 나무를 쓰러뜨리는 한 번의 작은 도끼질'이며 '태산을 이루는 티끌 하나'이자 '천리를 채우는 한 걸음'이다.
* 2019년 10월의 글을 고쳐 썼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지만, 글은 고쳐 쓰는 게 맞네요.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어서 한참을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