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무례해지지 말기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6.2.20 )

( 라라크루에서는 금요일마다 바스락 작가님이 추천하는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문장] ☞ <꿈꾸는 낭송 공작소> 이숲오

"세상의 나무들은 잎이 진다고 나무로 존재하기를 포기한 적이 없어. 오히려 그걸 시간의 향기로 버텨내지. 한평생 살며 게으른 나무를 보질 못했네."


[나의 문장]

몸의 모든 기관들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묵묵히 제 몫을 다한다. 일부러 사람을 해치는 기관은 없다.


[나의 이야기]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갑자기 몸을 무리하게 썼더니 전에 없던 증상이 생겼다. 하루이틀 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차도가 없었다. 웬만해선 가지 않으려 했는데, 제 발로 병원을 찾을 만큼 아팠고 생각지도 못한 수술이 결정됐다. 설 연휴가 끼어 있어 수술 스케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2월 마지막 주로 날이 잡혔다.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지속될 때는 당장 조치를 취해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다 차츰 살만해지니 꼭 수술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는, 안 해도 된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또 심해지면 찾아오면 된다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고, 수술 직전에 말했다.


수술 후 사흘째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남편에 이르기까지 경험했던 수술인 데다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 2위라고 하니, 사실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암이나 난치성 질환을 겪고 계신 분들의 기약 없고 지난한 투병을 생각하면 '병', '통증', '수술' 등의 단어를 쓰는 일이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수술명을 이야기하면 모두 일단 웃었다. "어머, 어떡하니? 너무 아프겠다. 하하하하", "괜찮을 거야. 잘 먹고 푹 쉬고. 호호호호", "에구, 너무 힘드시겠어요. 크크크크"

심지어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도 수술 잘하라는 전화를 하셔서 웃고, 수술 잘 됐냐는 전화를 하시면서 또 웃었다. 어린이들에게만 웃음 버튼이 아니었다. '똥', '똥꼬'는 어른들도 일단 웃음 터지게 만드는 단어였다.


계획된 일정에 펑크를 내는 마당에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돌려 말하자니 어디가 아픈 거냐며 너무 걱정들을 했고, 정확한 수술명을 이야기하자니 낯부끄러웠다. 정면 돌파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얘기하다 보면 상대는 빵 터지고 말 거, 내가 먼저 터뜨리기로 한 것이다. "똥꼬 수술이 잡혀서, 똥꼬 이슈로 이번 스터디에는..."


뭐 이런 걸 창피하게 글로 쓰냐고 물으신다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씩 한번 웃으시라고, 이미 자신도 모르게 킥킥거리고 있는 거 다 안다고 답하겠다. 설마, "여자가 창피하게~"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똥꼬수술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박경효 작가님의 <입이 똥꼬에게>는,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며 똥꼬를 업신여기던 입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똥꼬의 이야기다. 눈, 코, 귀, 손, 발도 입과 한통속이었다. 더러운 똥이나 싸고 냄새나 풍기는 똥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입의 소원이 이루어졌던 날, 입은 똥꼬를 대신해 냄새와 똥을 뱉어내야 했고 그제야 똥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내 몸의 모든 기관은 나를 살리기 위해 쉼 없이 애쓴다. 먹고 자고 싸고 움직이는 모든 당연한 행위가 그들의 묵묵함으로 채워진 것이었다. 꼭 어디 탈이 나야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고마워하며 다짐하는 나란 사람은 무심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였다. <입이 똥꼬에게> 속 입처럼 말이다.


자랑스러운 내 똥꼬에게 이 노래를 바치며 마무리하련다. 여러분의 똥꼬도 내내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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