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6.2.27 )
( 라라크루에서는 금요일마다 바스락 작가님이 추천하는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문장]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완 지음
고민은 필요한 것이지만 분명한 답도 없고, 답을 얻었다 한들 그 방향대로 일이 잘 돌아가지도 않는다. 만약 잘 돌아가더라도 꼭 좋은 선택이라는 법도 없다. 내가 한 선택이 당장은 맞는 것 같아도 세월이 흘러 잘못된 결과를 낳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기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된다.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수 있는 이 사실 앞에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는다.
[나의 문장]
이완, 나른함, 여유는 삶에 분명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긴장을 풀어라, 여유를 가져라.'라는 조언이 넘쳐나지만 일을 추진하고 완수함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느긋한 자세로 살아가다가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예민하게 감지하고 기민하게 대처한 덕분에 뜻밖의 행운을 마주하기도 한다. 삶은 그렇게 단순치가 않다. 그러니 긴장과 이완을 적당히 반복하며 사는 것이 삶을 누리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나른한 방학을 끝내며 나는 다시 똥꼬에 힘을 빡 줘본다.
[나의 이야기]
"아침부터 왜 이렇게 바빠?"
오전 내내 온 집안을 분주히 오가는 내게 작은 아들이 물었다. 어제까지 며칠째 눕다 똥 싸다, 눕다 좌욕하다, 눕다 먹기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새사람이라도 된 듯 느껴졌던가 보다.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이번 주 토요일에 어떤 행사를 맡았는데 그 사전 모임이야."
오후 일정 때문에 마음이 바빠진 탓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새 학기 강의 계획과 3월 첫 주부터 시작하는 학업, 몇 건의 회의, 스터디 일정 등이 나를 더는 누워있지 못하게 했다. 치질 수술을 하고 병원 침상에 누워있던 지난 월요일, 새 학기 일정 조율에 마음이 급해진 선생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하셨다. 물론 내 수술 여부를 알 길이 없는 분들이니 나는 최대한 아무 일 없는 듯 응대해야 했다. 통화를 끝내고 다이어리에 일정을 등록하며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일단은 3월의 나에게 모든 것을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이완해야 할 때라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수술 후 일주일 동안 특별한 일정이 있던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내내 집에 있었다. 하루 세 번의 좌욕과 투약. 통증을 달래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하루가 고달팠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무언가를 집어 올릴 때, 남편이 내 근처에 다가올 때마다 똥꼬에 힘이 갑자기 들어가며 통증이 몰려왔다. 불편함, 부자연스러움, 번거로움으로 점철된 일주일이었다. 그런데도 좋았다. 공식적으로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나른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두 번의 외출 동안에는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었고 심지어 왕복 3시간의 운전을 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집에 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불쾌감이 몇 배로 몰려왔다. 침대로 기어 올라가 적외선 조사기를 엉덩이에 쪼이며 나른하게 이완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밖에 있는 동안은 온몸이 긴장상태가 되고 똥꼬에도 힘이 팍 들어가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 아니라 긴장으로만 채워진 상태. 나를 온전히 알고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꽤 많이 긴장을 하고 산다. 집을 나서는 순간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을 팍 준 채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주위를 경계하던 원시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일에서 해방되는 순간,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불속에 몸을 맡기는 순간, 긴장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이완의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 나른하게 늘어져 있어도 괜찮은 곳에서 충분한 안식과 위로를 얻는다. 긴장의 세계로 재진입할 힘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이내 다시 일어나 자발적으로 주섬주섬 갑옷을 껴입는다.
긴장이 없다면 이완의 단맛도 모를 터이다.
이완이 없다면 긴장의 짜릿함도 모를 터이다.
무한으로 반복하는 긴장과 이완의 삶이 지루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수천수만 번의 담금질로 삶의 강도와 경도는 높아질 것이다.
봄이다.
개학이다.
다시 똥꼬에 힘 빡 주고 나아갈 때다.
라라크루 14기의 마지막 날, 마지막 글이다.
아무 상관없다.
글쓰기는 애초에 긴장, 이완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담금질을 기록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