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이 많이 가는 OO >
몇 년 전, 바쁘다는 핑계낌에 장만한 로봇청소기는, 집안 청소를 믿고 맡기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대륙의 실수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실수가 잦다. 다니시는 길에 놓여있는 각종 전선들은 모두 치워드려야 하고 화장실 문도 닫아두어야 한다. 기분 좋은 날은 현관으로 떨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청소를 마치고 위풍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가지만 수 틀린 날에는 현관바닥으로 친히 내려가 청소를 마치시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휴면'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가끔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 앱으로 위치 확인을 하면 "Hi~ I'm here~"하며 밝게 소리친다. 손이 많이 가지만 나름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저 감사하다.
로봇청소기뿐 아니라, 함께 사는 남자 셋 모두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버릇을 잘못 들인 나의 잘못이 크지만, 어느 집이나 '엄마'라는 역할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꺼이 손을 대주어야 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날 효용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니, 그것도 감사해야겠다.
16년 전, 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때에 아주버님 내외분이 이혼을 하셨다. 엄마라는 사람은 무책임하게도 5살, 4살 아들을 두고 떠나버렸다. 아주버님과 시어머님은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셨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하는 일들을 맡아하셨다. 세월은 정직하게 흘러 어른들은 늙고 아이들은 자랐다. 작은 아이는 직장 일로 캐나다에 체류 중인 아빠를 따라갔고, 큰 아이는 한국에 남아 대입을 3년째 준비 중이다.
4수쯤 되니 가족들의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군대라도 가야 하는데 면제가 되었으니 정신을 차릴 기회도 놓쳤다.", "저렇게 막연히 대입만 준비하다가 20대가 다 가버린다.", "아빠가 있는 캐나다라도 가서 영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등등...
하지만 나는 걱정보다는 미안함이 더 큰 작은엄마다.
이혼 후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온 큰집 아이들의 케어에 나에게도 일정 정도의 책임이 주어졌었다. 아주버님과 어머님만큼은 아니었지만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유치원 상담이나 재롱잔치 사진 찍어주기, 학부모 참관수업 참여'등의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여섯 살, 다섯 살 된 큰집 아이들과 네 살, 한 살짜리 나의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기도 했고 어머님이 여행 가시면 우리 집에서 며칠 동안 돌봐주기도 했다. 28세의 엄마였던 나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세집 살림이 너무 힘드니 차라리 모두가 한집에 모여서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해보았지만 모두가 경황이 없던 시절이었고, "그러다 너희까지 이혼할라.." 하는 배려로 무산되었다. 그러다 남편의 이직과 나의 감당 못할 스트레스로 이사를 결정해 먼발치서 가끔 만나는 작은엄마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도 계셨고, 어머님도 매일같이 출근하시면서 아이들을 케어하셨다. 엄마의 공백을 채우시느라 손주들에게 늘 백화점 옷을 사 입히시고 피아노에 수영에 바둑, 영어유치원까지 보내시며 뒷바라지하신 시어머니... 어머님이 들으시면 서운해하시겠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빈자리가 컸을 것이다.
언젠가 제삿날, 내가 준비해 간 돼지 등갈비 구이를 맛있다며 드시던 아주버님이, "제수씨~ 우리 집에선 이렇게 엄마가 만드는 음식을 먹어볼 수가 없어요~"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랬다. 지친 하루를 끝낸 식구들을 맞아주는 김치찌개 냄새나, 먹고 싶은 것을 해달라고 하면 투덜거리면서도 만들어주는 '엄마'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어머님과 도우미 아주머니가 끼니를 챙겨주긴 했지만 엄마의 '그것'과는 달랐으리라...
늦게 들어오는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만취해 들어온 남편에게 등짝 스매싱을 던지는 사람.
여기저기 나뒹구는 양말을 주워 담고 어질러진 방을 보며 눈 흘기는 사람.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귀찮게 쫓아다니며 궁금해하는 사람.
그러다가 삐져서 며칠 동안 차가운 기류를 만들기도 하는 사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가족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투덜거리면서도 손길을 더해주는 사람...
내 자식 챙기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이기심에 도망치듯 이사 온 작은엄마라서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그들의 지금 인생이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심한 책임감을 느낀다.
손이 많이 가던 시기에 손길을 주지 못한 내가 이제 와서 이래라저래라 해도 되는 것인지도...
지금이라도 신경 써야 한다며 내미는 손길이 어쭙잖은 참견이 돼버리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