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화 >
마무리해야 할 것이 많은 시즌이다. 프로젝트는 5일, 올해는 8일밖에 남지 않았다.
곧 두 아이의 졸업식이 있고 그들의 학교에서 했던 나의 활동들도 종료된다.
큰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지난 3년 동안 학부모회 활동을 했고 오늘 마지막 모임인 평가회를 가졌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학부모회장으로 두 해 동안 봉사를 했고 올해는 감사직을 맡으며 한 발치 물러섰다.
다른 곳들과 달리 시험감독이나 폴리스 등의 학부모 활동이 없던 학교였던지라 학부모들이 학교 문턱을 넘는 일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학부모들의 학교 방문이라는 것이 자칫 치맛바람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학교와의 소통창구가 전무하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부모회장 첫해에 학부모 독서동아리 '책울림'을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학부모 진로진학 동아리 '맘토링'을 만들었다.
'책울림'은 여느 독서동아리처럼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다수의 회원을 모집하지는 못했지만 학부모가 학교를 오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맘토링'은, 어찌 보면 나의 야심작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와는 달리 학부모들의 관심사가 온통 아이의 진로, 진학인 고등학교의 특성에 맞춰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정확한 정보를 받아 아이의 진학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개설하게 되었다. 올해로 두 해째를 맞았고 학교 측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을 한 듯 보인다.
평가회가 진행되는 내내 모든 감사와 공치사는 현 학부모회장에게로 쏟아졌다. 진로진학 동아리의 지속적인 관리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셨고, 큰아이의 입시 경험으로 풍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분이셨으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모를 허전함과 서운함,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동아리를 만든 건 난데...'
'동아리를 정착시키느라 많은 고생을 했는데...'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속, 머릿속으로 혼자만 시끄러웠다.
어느 조직에서든 '1기', '1회' 등 첫 타자가 갖는 책임과 의무, 노력의 몫은 크다. 돌멩이 하나도 일일이 주워가며 불모지를 개척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들어가지만 '선봉대'라는 완장 맛에 어느 순간 도취되어 묵묵히 길을 간다. 하지만 황홀함은 영원하지 않고 후발주자들에게 길을 내주어야 하는 때는 오고 만다.
'우이쒸... 기껏 열심히 길 만들어놨더니...'
'죽 쒀서 개준 꼴이네... 난 죽 맛도 못 봤는데...'
'열심히 달려왔더니 남 좋은 일만 했네...'
본전도 생각나고 단 꿀만 받아마시는 것 같은 다음 타자가 속절없이 못마땅하기도 하다.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면 불편한 상황에 계속 나를 던져야 하는 것처럼, 조직도 마찬가지다.
정체되어있는 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기존의 사람, 기존의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계속 받아들여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과정에서 소위 원로라 불리는 사람들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진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선봉대에서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결국 각자의 마음가짐이라고... 날 다독인다.
내가 잘 닦아놓은 길을 후발대들이 편하게 갈 수 있다면, 그래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이제는 가시는 길 어려움 없도록 엄호해주고 손뼉 쳐주는 일만 남았다고...
"전 회장님이 동아리 잘 만들어주신 덕분이에요~"
밴댕이 소갈딱지인 나는,
자리를 마무리하던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의 한마디 공치사로 마음이 한결 노골노골해지고 여유로워져... 버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항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낙화>, 이형기
이렇게, 40이 넘어서도 또 한뼘 성장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