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데미안 3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거기 내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여느 때처럼 꼿꼿하게 바른 태도로.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여는 때와는 아주 달랐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그에게서 나왔다고 무엇인가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은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굳어져 있었고 내면을 향하여 혹은 아주 먼 곳을 향하여 있었다.
(88~89쪽, 데미안, 민음사)
* 진짜 깊은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 본 적이 있나요?
*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나요?
* 나는 그 장면이 어떻게 느껴졌나요?
* 깊은 곳의 나, 진짜 나를 보고 나서 나는 어땠나요? 변했나요? 어떻게 변했나요?
기꺼이 하는, 의지가 강한, 성실한, 꼼꼼한, 체계적인, 열정적인, 이해심 많은, 논리적인, 활기 있는, 사려 깊은, 쾌활한, 단호한, 말주변이 좋은, 매력 있는, 평판이 좋은, 절제력 있는, 차분한, 포용력 있는, 모범적인, 추진력 있는, 겸손한, 모임을 좋아하는, 영향력 있는, 리더십 있는, 결단력 있는, 호의적인, 표현력 있는, 인심 좋은, 친절한, 솔직한, 상냥한, 온화한, 공손한, 신중한.
대학원 스피치 수업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나'에 대해 조사해 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공적인 말하기에서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신력을 쌓아야 하는데, 공신력의 첫 단계는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나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해 상대의 신뢰를 얻어야 설득력 있는 말하기를 할 수 있다.
남편, 아들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설문을 돌렸다. 위의 형용사들이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였다.
가족들은 나를 꼼꼼하고 사려 깊고 열정적이며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은 '단호한'이라는 단어로 나를 표현하면서도 '유머러스한'이라는 형용사가 예시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함께 교육자원봉사를 하는 선생님들은 내가 성실하고 체계적이며 기꺼이 하고 추진력과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네 번의 수업에서만 나를 접했던 학우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절하고 성실하고 차분한 사람.
하지만 난 늘 나를 향한 이런 평가를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를 그렇게 보는 상대를 의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과연 그런가, 그렇게 보였던 상황이 무엇이었을까, 그게 나의 진심이었을까, 만들어낸 이미지 아닐까, 내내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를 반문한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나라는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많고, 완벽한 마무리보다는 어찌어찌 완수하는 결말에 집중하는 편이며, 싫어하는 사람이나 일에 대한 불호가 강하게 표출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무적인 것은, 나는 나라는 사람이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덜렁거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꼼꼼하게 계획표를 작성한다. 매일 해야 할 일, 이번 달 안으로 마무리해야 할 일을 휴대폰과 다이어리에 기록해 둔다. 완수할 때마다 지우고, 완수하지 못했을 때 다시 데드라인을 정하면서 느슨해지려는 정신줄을 붙잡아둔다.
사람과 일에 대한 불호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호'의 이유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상대가 싫은 이유가 단순히 내가 긁히는 어떤 지점 즉 나의 열등감 때문인지, 누구나 문제 삼을만한 상대의 문제인지를 생각해 본다. 전자라면 나를 다독이거나 꾸짖고, 후자라면 접촉을 최대한 피해 나를 지킨다. 나로 인해 다치게 될 상대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하기 싫은 일이 생긴다면 귀찮아서인지 어려워서인지를 생각한다. 귀찮아서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어려워서라면 새로운 걸 배울 기회라 생각하자며 자신을 설득한다.
아마도 나의 이런 노력이 타인들에게는 꼼꼼하고 신중하며 친절하다는 인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 사이의 간극이 크지만, 그 사이의 모든 것이 나라고 할 수 있다. 그 긴 스펙트럼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나다.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몇 가지 형용사로 잘 빚어놓고 굳어버리는 석고상 같은 '나'가 아니라, 끊임없이 떼었다 붙였다 해서 볼 때마다 모양이 조금씩 변하고 앞으로도 변할 수 있는 찰흙 반죽 같은 '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갇혀있거나 멈추어있지 않다는 인상이 나의 공신력을 높이고 설득력 있는 말하기로 이어지는 태도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