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1987년 9월 28일 월요일 맑음 (5학년 때 일기)
제목 : 새로 만난 친구
1, 2학년 때 나와 제일 친했던 임의선이라는 아이가 목포에 전학 간지 2년 만에 수원으로 다시 전학 왔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2년 만에 내 앞에 서있는 임의선이 보였다. 갑자기 괜히 기뻐지고 지금까지 모여있던 감격이 쏟아져 나왔다. 임의선이 우리 반이 안되어 섭섭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1988년 9월 28일 수요일 맑음 (6학년 때 일기)
제목 : 산수! 산수!
오늘은 학교에서의 공부를 반이나 산수로 때웠다. 3시간이라는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을 산수와 씨름하였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산수 시간만 되면 선생님의 시간이 되신 듯 산수를 열성적으로 가르치신다. 그것은 좋지만 하루에 세 시간씩이나 산수를 한다는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위해 한 시간 더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은 싫으면서도 열심히 배웠다.
1990년 9월 28일 금요일 맑음 (중학교 2학년 때 일기)
제목 : 인생무상
아버지께서 숙경이네 집을 지으신 대가로 숙경네서 저녁 초대를 했다. <미가람 뷔페>라는 곳으로 갔다...... 중략.... 나와 숙경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어떻게 해서 '정해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숙경이가 정해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순간 나는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 좋아할 수 없는 걸까?.......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정해일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생각도 못한다. 결국 아무 소용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고 돌아가 모든 것을 잊고 제일을 하겠지. 모든 것이 추억 속의 그림이 되어 먼 훗날 웃으며 생각하고 아무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현실에 충실하고 지나버린 일들은 지난 일들일뿐이라 생각하자고 마음먹으며 잠을 재촉했다.
1994년 9월 28일
학교에 계란 삶아가기 잊지 말 것.
1995년 9월 28일
예정되어있던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도훈과의 소개팅 26일로 변경.
1996년 9월 28일
오빠와 사귄 지 69일째. 오빠랑 롯데월드 놀러 갔다.
서울 사람은 다 모인 듯.
kenzo에서 술 먹고 공원 잔디 위에서 술 먹고 집에 12시 넘게 들어와 혼나고...
그래도 즐겁다. 왜? 사랑하니까. <연어> 다 읽음.
1997년 9월 28일
오빠와 사귄 지 434일째. 일어나자마자 전화통화.
축구 한일전 2:1로 승.
외롭다.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다.
1998년 9월 28일
졸업사진 재촬영. 오빠 어머니가 추석빔 사주심.
1999년 9월 28일
늦게까지 학원일.
2011년 9월 28일
깐부 매출 1,042,000원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내 모든 기록물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일기장, 다이어리,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성적표, 남편과 연애하면서 주고받은 편지, 결혼 후 주요 일정을 적어놓았던 탁상 달력까지... '기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살아온 날을 회상하는데 이것만큼 확실한 것들이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오늘 날짜와 같은 과거에 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가?
그 시절의 나를 만나는데 왜 그리 설레는지... 다이어리와 달력을 빽빽이 채운 계획과 다짐들을 보며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음에 놀랐다.
오늘 밤은 이것들을 보느라 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