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원제는 The course of Love.
한 달에 한번 참여하는 독서모임의 이달 선정 도서였다. 낭만주의에 빠져 결혼을 선택하는 커플들이 현실의 각종 난관들을 헤쳐나가며 어떻게 성숙한 사랑을 완성하는지를 소설과 철학서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삶에 대해 정리하는 100일을 보내는 중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남자와의 사랑과 삶이다. 낭만적 열정만을 갖고 뛰어든 24살의 결혼, '그 후의 일상'은 치열하고 스펙터클했다. 좋았던 날들, 행복했던 날들이 많았지만 때로는 끝내고 싶기도, 도망치고 싶기도 했었다. 결국은 모두 버티고 견뎌내어 누구보다도 성숙하고 성장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다.
내년이면 20주년 되는 내 결혼 생활 동안 깨달은 몇 가지 팁을 정리해 본다.
1. 내가 가장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자.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하자.
어느 순간 내 삶의 무게가, 내 하루하루의 고통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유치하지만 조목조목 '그'와 '나'의 결혼생활 기여도를 저울질 하기 시작했다. 치킨 장사를 하던 시절이 그랬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등교를 챙기고 녹색 어머니 활동을 하고 집안일에 장사까지 다 하는 나와, 정오쯤 일어나 오후 장사를 시작하고 장사가 끝나면 술 마시러 가던 남편 사이에서 왠지 나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와 집을 오가는 차속에서 소리 내며 울었던 기억이 선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더 손해 본다는 생각이 둘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실제로 내가 더 손해 보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정체된 삶에 대한 고민으로 그 사람 역시 하루하루가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그저 딱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측은하고 안쓰러운 맘만 남는다.
2. 힘 빼고 받아들이자.
남편에 대한 의심과 집착으로 힘겹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파놓은 까마득한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며 나오지 못하고 피폐해졌다. 늘 나를 잡고 믿음을 주기 위해 애쓰던 남편도 서서히 지쳐갔다. 보기만 해도 으르렁 거리던 시절. 이렇게는 살 수없다고 생각해 한번만 나 자신을 다잡아 보고 안되면 이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은 별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였다.
욕하며 미워하는 나도 나, 미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반찬 준비하는 나도 나. 미운 너도 너, 이쁜 너도 너.
애틋하고 뜨겁게 사랑하던 우리도 우리, 미워하며 으르렁거리는 우리도 우리.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아이들의 아빠, 흥겨운 술친구, 뜨거운 밤을 보내줄 섹스 파트너' 정도로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 맘이 평온해지고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당연히 남편과의 대화도, 관계도 모두 좋아졌다. 그저 경직되었던 맘의 힘을 풀었을 뿐인데 말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그려진 풍경은 스무 살 시절 어느 날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매일 붙어 다니던 우리는 남편 아버님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게 되었다. 외부 수업을 받은 나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남편은 먼저 귀가하겠노라고 했다. 아쉬운 맘으로 학교에 복귀하는데 차창 밖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는 남편이 보였다. 반갑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마음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10분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혹여나 이미 버스를 타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다행히 아직 떠나지 않은 남편 얼굴을 한번 보고 버스에 태워 보낸 후에 '가슴 가득히 차오른 이것이 사랑이구나'라고 느꼈었다.
그런 낭만적 연애의 경험이 있었기에 '그 후의 일상'이 참혹하리만치 치열했다 하더라도 버텨낼 수 있었다고 믿는다. 내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내 모든 걸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법도 알게 되었다.
후회 없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