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아침저녁 쌀쌀함과 한낮의 더위가 교차한다. 옷장 정리를 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여름옷들을 모두 꺼내 서랍을 비워두고 옷장 깊숙이 보관해놓은 가을 옷들을 꺼낸다.
여름옷 중 몇 년째 자리만 이동했지 아무에게도 입히지 않았던 것들을 따로 빼놓았다. 한 두해 안 입으면 그건 앞으로도 계속 안 입을 옷 이건만 왜 그리 끌고 다니면 피곤하게 했는가...
가을 옷들 중에도 분명 올 가을에 입히지 않을 옷들이 있건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서랍에 정리해 둔다.
내년 초 옷장 정리를 할 때면 이 옷들은 버려지던가 다시 보관되던가 하겠지...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경험을 몇 번 반복해야 실수를 하지 않을까?
아니다.
혹시나가 '부정의 역시나' 대신 '긍정의 역시나'가 되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했기에 사람은 이리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거다. 이를테면 버리지 못하고 두었던 옷을 돌아온 유행 덕에 잘 입게 되었던 경험 말이다.
결국 인생은 모르는 거 투성이다. 아니, 자신이 경험한 것만 아는 거 투성이다.
옷장 정리를 하면서 구석구석 챙기다 보니 먼지가, 먼지가... 세상에나...
애들 어릴 때는 매일 구석구석 기어 다니며 걸레질에 스팀 청소기까지 돌렸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방만한 가사 활동이 시작된 건?
디베이트 코치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까? 아무래도 이래저래 신경을 못쓰기 시작했으니...
로봇청소기를 들인 후였을까?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정도의 청소 실력이니...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였을까? 초등학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무거나 집어먹지는 않으니...
한 집에 산지 10년 넘어가면서부터였을까? 치워도 표가 안 나니...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는, 휘발되어버리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며 우울해지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의 가치만큼 보상을 받는 것.
나머지 하나는, 우울해지지 않을 만큼만 가사노동에 힘쓰는 것.
난 후자를 택했다.
아니다... 전자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희망사항이었지.
어쨌든,
돌연사를 100일 후로 가정하고 시작된 D-100 프로젝트의 일주일이 지나간다.
처음의 착잡했던 심정은 많이 사그라들고 되려 설레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삶이 한층 더 깊어지는 느낌이다.
100일만 산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의미 있고 재미있게, 그렇게 수십 번의 100일을 살다 보면
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깊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