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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5. 2019

D-100 프로젝트
< D-95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속옷, 수건, 윗도리, 바지, 양말, 땀 젖은 운동복
이렇게 분류해서 적어도 하루 세 번은 돌리는 빨래 무더기.
걷고 나면 수북이 쌓이는 마른빨래 개기.
열흘에 한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알람 맞춰 놓은

식물이들 물 주기.
일주일에 한 번 모아서 하는 남편 셔츠 다림질.
15년 산 낡은 아파트의 더 낡은 화장실 청소.
하루 한번 운행하는 로봇 청소기 뒤를 쫓아다니며 하는 물걸레질.
매일 같은 시간 반복되는 저녁 찬거리 걱정.
작은 아들, 남편, 큰아들 순서로 하루 세 번 차리는 저녁 밥상.
어김없이 찾아오는 카드 결제일.
20년간 차곡차곡 쌓인 빚.     

죽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뒤죽박죽 섞여서 한꺼번에 빨아 흰옷은 검게 검은 옷은 희끗해질 빨래.
건조대에서 그대로 가져다 입을 옷.
물을 안 줘서, 혹은 너무 줘서 죽게 될 식물이들.
다리지도 않고 꾸깃하게 입을 셔츠.
누렇거나 붉은 물때가 생길 화장실.

꽉 찬 먼지통을 달고 청소할 로봇청소기.
가게에서 산 반찬이나 라면으로 각자 대충 때울 저녁.     

죽어도 걱정될 것 같은 풍경...     

하지만 현실은 다를 것이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세탁기나 청소기의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빨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해볼까를 검색할 것이다.
각자 자신 있는 요리를 해놓고 셋이 둘러앉아 엄마를 기억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군대 시절을 기억하며 각 잡아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걸어놓을 것이며
화장실 청소도 나보다 훨씬 깨끗하게 잘해 놓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나도 20년을 하루같이 반복하며 살았지만 처음엔 몰랐던 것들을 그들도 하나하나 배워가며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내가 생각나겠지.

그래서 오늘도 routine을 기쁜 마음으로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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