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Sep 25. 2019

D-100 프로젝트
< D-96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잠든 그대 얼굴이 보입니다.


결혼 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깊게 파인 눈가 주름과

생기 없는 피부.


잠든 사람 얼굴이 

다 그렇지 싶다가...

20년 전 보았던 어느 청년의

예쁜 잠든 얼굴이 떠오릅니다.     


충주의 어느 마을 회관.

매일같이 밤새도록 막걸리를 먹다 새벽녘에야 잠들던 

20대의 임시 농사꾼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자리 잡고 누워

잠을 잤었지요.

술 취했다는 핑계로 정신없는 척,

아무 데나 쓰러진 척 잠을 청한 곳은

그 청년의 옆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속이 다 터져 나온 낡은 소파 위에서,

저는 소파 옆 바다에 누워 동침 아닌 동침을 했습니다. 

나란히 얼굴 대고 누운 것도 아니고

손을 잡은 것도 아니며

심지어 누워있는 높이도 달랐지만

마냥 좋았던 그날 밤.

아침이 올 때까지 잠들지 못했지만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척하면서까지 

꼼짝 않고 누워있었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청년과 저에게 한 이불을 덮어주고 간 어느 학우에게

어찌나 고맙던지...     


실눈을 뜨고 바라본 청년의 얼굴은

뽀얗고, 차분하고, 앳되고, 사랑스러워

어루만지고 싶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에 묻혀있어도 예쁜 얼굴....     


그 얼굴을 이제는 실컷 어루만집니다.

한 이불을 덮고 같은 눈높이에

한 뼘이면 닿을 거리에 놓여있는 그 얼굴을 

다시 한번 천천히 뜯어봅니다.     


마을 부녀회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청년.

동녀 여학생들이 졸졸 따라다니던 청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으나

미안할 정도로 어루만져주고 싶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자는척하지 않아도 늘 함께 누워있을 수 있는 그대가

이제는 내 얼굴을 어루만져줍니다.               


얼마 전, 꿈에서 남편이 죽었다. 너무나도 생생해 잠에서 깨자마자 곤히 잠든 남편 얼굴을 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왜 그리 대성통곡하는지 영문도 모르면서 꼭 안아주던 남편. 내가 먼저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눈이 빨개지는 사람. 

20년간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마지막 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어서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D-100 프로젝트 < D-97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