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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5. 2019

D-100 프로젝트
< D-97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죽을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일상은 지켜야 한다.

식구들을 위한 끼니를 준비해야 하고 빨래와 청소도 해 놓아야 한다. 보름마다 알람을 맞추어둔 화분에 물도 주어야 하고 다음 끼니를 위한 장도 보아야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거창한 일들이 아니라 휘발되고 마는 일들일 지라도 여전히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것이 주부의 삶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내가 아니면 또 안될 것 같은 것이 집안일이다.      


오늘 그러한 일상을 살고 있는 20여 명의 여성들을 만났다. 

혁신교육지구가 된 용인시에서 마을교사를 양성하는데, 그중 디베이트 마을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맡았더랬다. 반년 동안 교육청 실무자들과 몇 번의 회의를 하고 커리큘럼을 짰다. 교재를 제작하고 지원자들에게 확인 전화를 돌릴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던 일인데, 드디어 오늘 첫 번째 강의를 시작했다. 용인에 거주하는, 교육 자원봉사와 디베이트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들이 30명 가까이 신청하셨고 오늘은 22분이 참석하셨다. 

지원 동기도 각자의 삶도 제각각인 분들이지만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같아 보였다. 

온전히 ‘나’에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 가족을 위한 일 말고 또 다른 가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은 욕구. 그것이 꼭 디베이트는 아니었겠지만 우연한 경험으로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어보는 시간.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24살에 결혼을 했다. 25살에 첫아이를 낳고 꼭 세 살 터울로 아이를 낳고 싶어서 28살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난 집에 있는 게 너무 좋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살았다. 

임신하자마자 대학원 시험을 보고 출산하자마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둘째를 낳고 얼마간은 육아에 전념하다가 전통음식을 배우러 용인에서 종로로 주 3회씩 1년을 다녔다. 몇 년을 떡과 육포에 빠져 종종거리며 살았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사업을 하겠다는 남편과 함께 치킨집을 3년간 운영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째는 디베이트 코치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살았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 끼니는 내손으로 해먹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반찬을 사본 적도 대충 배달음식으로 때우게 한 적도 없다. ‘나’를 위한 일을 하더라도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싶었던 것인지, 완벽한 인간이고 싶었던 내 고집과 강박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아이들에게 매 순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늘 고민했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도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갑자기 삶을 마치더라도 아쉬움 없기를 바란다. 

매 순간순간을 열심히 누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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