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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5. 2019

D-100프로젝트
< D-98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새벽녘 떡 찌는 냄새는 이 세상 냄새가 아니다. 그저 쌀가루가 익는 냄새가 아니다.

추운 날이면 거실이며 부엌 창문에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정도로 김이 서리는 냄새, 더운 날이면 내 뺨과 목을 타고 내리는 땀 냄새.

나를 꽤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사람으로, 배려가 깊은 사람으로, 진중한 사람으로,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냄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9월 중순인 오늘, 오래간만에 떡을 쪘다.

체대 입시 첫 실기를 치러 가는 아들을 위해 합격 기원 겸, 돌아오는 차속에서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 겸.

흡사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떠나는 아들의 끼니를 챙기는 늙은 어미인양...     

호재가 그렇게 초조해하고 긴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헤헤거리고 능글맞은 녀석, 공부보다 친구를, 독서실보다 코인 노래방을 더 좋아하는 녀석, 공부가 싫어서 체대를 가겠다는 녀석.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모습에 당황도 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래야지,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거사를 앞두고 초조하고 긴장하는 맘도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긴장하지 마~~ 평소대로 연습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있다.      



호재는 나에게 큰 숙제 같은 아이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처음 받는 이가 하는 실수를 내가 온통 경험하게 해 준 아이. 한때는 천재 같았고 한때는 악마 같았다. 그 모든 시절을 함께 겪고 이제는 친구가 되어준 아이.     



호재 나이 5살, 내 나이 29살 때. 둘이 얼마나 날을 세우고 싸웠는지 모른다. 언젠가 식탁의자를 내게 던져 아빠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이유야 기억날 리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난다. 식탁의자를 던질 만큼 분노가 차게 된 이유가 나일 거라는 생각에 두고두고 미안했던 마음. 남편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를 혼냈던 그날 때문에 두고두고 짠하다고 했다.     



호재는 6학년 등교 첫날 갑자기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분명 등교할 때는 멀쩡했는데 하교할 때는 사춘기 아이 특유의 쭉 찢어지고 끝이 올라간 눈꼬리가 되어 돌아왔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아무리 자녀와의 대화법을 다룬 책을 읽어도 실전에선 적용이 안되어 하루하루 미쳐가던 어느 날, 우리 둘 사이에 큰 전환점이 될 사건이 발생했다.

밖에서 연락도 없이 놀다 들어온 호재를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내고 돌아섰던 그날 밤, 우연히 보게 된 호재의 카톡에서 말로만 듣던 엄마 욕을 마주하게 되었다.      


“미친년 또 지랄이야!”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미안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창피해서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였을까?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던가? 다른 건 몰라도 그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었음은 잘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그 날 이후에도 몇 번의 갈등과 고비들이 더 있었지만 사춘기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려 노력했고 잔소리를 최소화했으며 안방 문을 닫고 들어와 답답한 내 가슴을 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들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각종 청과 효소, 된장, 간장, 김치를 담그며 신경을 다른 데로 돌렸다.

집에 있어주되 부담되지 않는 존재, 고기가 있는 끼니를 묵묵히 차려주는 존재, 관심은 있지만 참견은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주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

대책 없이 긍정적인 듯 하지만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밟고 있는 듯하다.

공부에는 관심 없지만 목표가 생기면 열심히 매진하는 모습도 이번 입시 준비를 하며 보게 되었다.

이제는, 엄마가 있건 없건,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아 맘이 놓인다.

대학을 가더라도, 혹은 못 가더라도 열심히 잘 살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다.     



방금 문자가 왔다.

“실기 망했음.”

“이 학교는 안 가는 게 나을 듯. 너무 멀고 학교 앞에 맥주집 하나도 없음.”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다가 들어감.”     



앞에 쓴 내용이 무안하다.

솔직해지자.

그냥 생각 없이 노는 거 좋아하는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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