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Sep 29. 2019

D-100 프로젝트
< D-91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당ㆍ정ㆍ청 조찬 회동', '대기업 임원 조찬 회의'.

등의 기사를 볼 때마다 아침부터 뭔 회의? 체할라... 했었는데... 내가 오늘 그걸 했다.

밤낮없이 바쁜 디베이트 코치들은 한날한시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한 코치님의 제안으로 일요일 아침 8시에 모이게 되었다. 장소는, ‘한끼줍쇼’에도 출연한 적 있는 코치님의 가정집. 요리하는 프로그램 출연자라 그러신지 아침부터 상다리 휘어지게 상을 차리셨다.      


오늘 조찬 회동의 목적은 ‘교도소 인문학 디베이트 프로그램 자원봉사자 사전 워크숍’이었다.

모임 장소를 제공하신 코치님과 변호사이신 남편분이 이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시는 주체이다. 다소 생소하고 낯선 이 프로그램에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들이 있어 긴히 모이게 되셨다고...     


국내 유일의 민간 교도소인 ‘여주 소망교도소’에서 진행되는 ‘사람 후마니타스 프로그램’은

“삶의 좌표를 잃고 표류한 이들이 인문학 디베이트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아 새롭게 날아오를 힘과 용기, 의지를 갖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김민영 코치님의 설명이다.

이미 올 상반기에 3개월간 1기 과정이 진행되었고 하반기에 2기 과정이 있는데, 그중 난 2주간 수업을 맡기로 했다. 사실 걱정과 두려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디베이트를 하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거늘 재소자라고 예외를 둘 이유는 없다. 그저 디베이트를 배우는 코치와 학생들의 입장으로 다가서면 될터...     


몇 가지 마음가짐을 공유하셨다. 그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첫째, 재소자라는 신분을 특별히 의식할 필요는 없으나 동시에 잊어서도 안된다.

둘째,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보다는 따뜻하지만 이성적인 코치의 태도를 견지하자.     


다녀오신 분들의 경험담과 당부 말씀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려본 교도소 디베이트 수업의 풍경은 학교 디베이트 현장의 풍경과 다르게 그려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뭘 하거나 말거나 떠드는 친구, 눈 똥그랗게 뜨고 집중하는 친구,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는 친구, 말하고 싶어 입은 씰룩씰룩거리는데 주저하고만 있는 친구, 괜히 딴지 거는 친구, 딴지 거는 애 따라 하는 친구 등등.

그럼에도 모두들 실습만 하면 열심히 참여한다는 말씀에 그 모습마저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늘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관종이란다~~”

이렇게 얘기하면 모두 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날 쳐다본다.

‘선생님이 우리 보고 다 관종이래... 우리 중에 관종은 따로 있는데...‘라는 표정으로...

“누구나 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 내가 얘기할 때 집중해 줬으면 좋겠고, 내 얘기에 고개 끄덕여 줬으면 좋겠고. 앞에서 멋지게 말하고 싶고, 노래도 잘하고 싶고, 운동도 잘하고 싶고. 이 모든 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때문 아닐까?”     

떠드는 아이도, 집중하는 아이도, 수업 분위기 흐리는 아이들도 결국은 선생님의 눈 빛 한 번을 더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온 에너지를 쏟아서라도 그래 주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난 이 반을 1년간 책임지는 담임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회성으로 들러 디베이트만 가르치고 홀연히 사라지는 선생님이 한 아이를 변화시켜보겠다는 일념으로, 한마디로 '설치는' 것밖에는 안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이번 교도소 인문학 프로그램도 그러리라... 사회에서 격리되었으나 누구보다도 사회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최선과 최소한의 경계 그 어디에서 나야말로 좌표를 잘 찾을 수 있을는지...


삶을 90여 일 남겨두었다는 것이 마치 석방일을 기다리는 재소자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90일 동안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90일 후에 새로운 삶을 맞이할 것 같다는 설렘.

분명 기존의 나와는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의무감.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D-100 프로젝트 < D-92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