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지난주부터 마을교사 양성과정 수업을 하고 있는 중학교는 폐교다. 올 2월에 폐교되었으니 7개월 동안 비어있었던 셈이다. 내년에 용인시의 리모델링 계획이 있고 상주하시는 공무원분들이 있어 버려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교 어디에서도 생기란 찾아볼 수 없다.
정문은 폐쇄되어 후문으로 차량이 드나드는데, 후문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 위의 보도블록들은 초록색 이끼가 잔뜩 끼어있다. 주차를 하다 보면 학교 건물 앞에 길냥이들이 집주인인양 쳐다보고 있다. 주차장에서 로비까지 걸어가는 길에 있는 화단 나무들은 흡사 정글을 방불케 우거졌다. 대봉감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1990년 개교와 함께 했는지 실한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너무 주렁주렁 열려서 되려 외로워 보인다. 운동장은... 가관이다. 학생들이 뛰어다니며 공을 차고 줄넘기를 하고 이어달리기를 했을 운동장에는 삐죽삐죽 듬성듬성 튀어나온 키 큰 풀들과 잔디 운동장이었나 싶은 키 작은 풀들로 들어차 있다. 어디서 날아와 뿌리를 내렸을까 싶다.
신설 중학교의 첫 입학생이었던 30년 전이 생각난다. 체육시간은 체육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운동장 돌 고르기를 위한 시간이었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담벼락에는 빼빼 마른 은행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이 은행나무들은 건설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현장 정리를 하며 뽑아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중학교에 기증하셨던 애들이었단다.) 10년 전쯤 우연히 지나가다 보니 잎도 무성하고 제법 몸뚱이도 굵어져 있었다.
이 폐교에게도 처음이 있었으리라... 새 학교라고 시설 좋다고 입학했는데 틈만 나면 돌 고르기를 하러 운동장으로 나가는 아이들의 투덜거림이 있던 시절. 새책상, 새 의자, 아직 어리고 작은 나무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이 폐교에서 마을교사 과정 수강생들의 '첫' 디베이트가 있었다. 긴장, 설렘, 하얘지는 머릿속, 횡설수설, 진땀 등으로 가득 찬 폐교 교실 한구석. 그들의 '첫' 디베이트 실습.
덩달아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의 '첫 디베이트 실습'도 떠올랐다. 나 역시 하얗게 비워지는 머릿속을 경험하며 교실 이곳저곳 쥐구멍이라고 생각될만한 것들을 찾아 헤매던 동공... 심장이 터질 것만 같던 첫 실습을 시작으로 수십 번의 디베이트를 해보고 또 수십, 아니 수백 번의 디베이트를 참관하면서 무성한 잎을 가진 은행나무처럼, 실한 대봉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처럼 성장했다.
첫발을 뗐다고 모두 실한 대봉을 열리게 할 수는 없다. 학교가 살아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 운동장을 밟아주는 아이들의 발길, 공간을 매우는 재잘거림과 숨결이 필요했듯이 모든 일에도 처음의 설렘을 훗날의 영광으로 바꾸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티도 안 나고 귀찮은 일들. 운동장의 돌 고르기 같은 일들.
그걸 알기에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시작하기 힘들어지는가 보다.
사족 한마디...
처음이 모두 의미 있는 건 아니다. 다시 돌아가 그 '처음'의 싹을 틔우지 말걸... 하는 것들도 있다.
나에겐 첫 대출이 그거다.
내년에 리모델링하는 이 폐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비전은 있으리라 생각하련다.
대출 0원이 되는 '첫'날을 기약하며... 살아있는 동안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게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