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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2. 2019

D-100 프로젝트
< D-88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아들아.

힘들게 운동하고 늦게 귀가하는 아들을 맞이하려고 올해 들어 술 약속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특히나 가까스로 잡고 있는 멘탈이 흔들릴까 봐 고3 엄마들과의 만남은 안 나가고 싶었는데...

오늘은 스스럼없는 오랜 지인들과의 만남인지라 피하지를 못했단다.


너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기도 하고, 같은 고3 학부모이지만 다행인지 각각 이과, 문과, 예체능으로 나뉘어 서로 경계하는 마음 없이 편하게 만났단다. 고3 되어서도 모평 치른 날마다 모여 지친 맘 달래 보는 사이이기도 하지. 오늘도 수시 원서를 써놓고 "이젠 우리 손을 떠났다.  운명에 맡기고 한잔하자."라며 가볍게 만났단다.

그런데 엄마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구나. 어느 타이밍이었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만나러 나가는 순간부터 울컥울컥 올라오고는 있었는데 어느 대목에선가 그렁그렁하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모두를 놀라게 했지.


A 엄마의 다짐은 '고3이거나 말거나 평소와 다름없는 올해'였다고 한다. 특별히 더 챙겨주지도 말고 평소 하던 대로 덤덤히 자리를 지켜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른의 자세라고 생각했단다. 유난을 떠는 엄마들은 그만큼 아이를 믿어주지 못하는 부모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더구나. 그녀의 그런 당당한 소신을 들었을 때 울컥했나? 모르겠다.


B 엄마는 수능 100일 전부터 매일 절에 들러 108배를 한다는구나. 가끔은 기도발이 좋다고 소문난 전국 곳곳의 절에 찾아가 등을 달고 108배를 하고 온단다. 강화 보문사,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여수 향일암, 단양의 구인사를 다녀왔고, 다섯 곳을 가면 좋다 하여 마지막 한 군데를 물색중이라더구나. 갓바위 절에 올라가던 길은 죽을 것 같고 끝없는 고행의 길로 느껴졌지만 기적적으로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다면 순전히 갓바위 절 덕분이라고 하더라. 절하기 전에 부처님 전에 올렸던 생수를 꼭 다시 들고 와 아이에게 매일 마시게 하고 생일날엔 절밥을 싸와 먹였단다. 평생 한 시간 이상 거리는 운전을 해본 적이 없는데, 왕복 7시간 운전을 해서 절에 다녀온 다음날 병원에 입원해 링거도 맞았다는구나. 절에 갈 때는 비린 음식도 먹지 않았으며 50만 원을 들여 탑 안에 불상도 들였다더라. 스카이 캐슬에 나올 법한 입시 컨설팅도 받았고 회당 가격을 말해줄 수 없는 논술 선생님을 극적으로 소개받았다고도 하더라.


이 대목이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이 좋은 결과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엄마라고 느낀 것이?

아침밥 거르는 널 위해 겨우 홍삼 달인 물을 건네주거나 고기반찬 끊이지 않는 밥상만으로는 정성이 하늘이 닿지 못한다고 생각해 눈물이 났던 걸까?

아직도 언제인지,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A 엄마처럼 덤덤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B 엄마처럼 열과 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미안했나 보다.

온몸이 아파도 어쩔 수 없이 매일 실기를 준비하는 네 모습이 떠올라 안쓰러운 맘도 들었고,

더 많은 걸 해주지 못해 늘 스스로를 자책하는 네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속상하기도 했나 보다.

고등학교 입시로 저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네 동생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들었고,

남들처럼 야무지거나 현명한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컸나 보다.


내일부터 갑자기 절에 가서 108배를 한다거나, 우린 평소대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자고 당당하게 말할 용기는 여전히 나지 않는다. 그저 내일도 등굣길에 홍삼 달인 물을 건네줄 것이고, 고기를 구워 밥상을 차려 줄 거야. 잔소리할 게 있어도 마른침을 삼키며 꾹 참을 테고, 땀에 절은 운동복을 빨아줄 거다.

그것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그거라도 해주며 남은 40여 일을 보낼 거다.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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