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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05. 2020

쉰세 번째 시시콜콜

3년 넘게 우리 집 청소를 책임져주고 계시는 이모님이 계시다. 당시,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청소기 한번 미는 것도 힘든 일이 되면서 큰 맘먹고 모시게 됐다. 이틀에 한 번꼴로 일을 하시는데 처음에는 대신 청소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했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슬렁슬렁 놓치고 간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꼼꼼하신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슬렁슬렁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하셨고 크고 작은 실수도 잦으셨다. 한마디 할까도 고민했지만 괜한 짓 한다 싶어 접어더랬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모님이 청소하는걸 유심히 지켜보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때마다 울화통이 치밀기 시작했다. 

'아니, 왜 저렇게밖에 못하는 거야?'

'일부러 저러는 거야?'

'아... 진짜! 너무하네~~~~!'

참다못한 어느 날. 현관 앞에서 같은 자리만 몇 분째 서성이는 이모님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왜! 잘하다가 꼭 한 번씩 그러시더라?"

그러나 이모님은 여전히 길 잃은 사람처럼 그러고 계셨다. 급기야 마루에서 현관으로 내려가는 길에 발을 헛디뎌 고꾸라지기까지 하셨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지 괜찮으신지 물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는 끌어다 마루 위로 앉혀놓고 호통을 쳤다.

"오늘은 일 그만하고 집으로 가셔요!"

"집으로 못 찾아가셔도 모셔다 드리지 않을 거예요. 배터리가 방전이 되든 말든 알아서 가셔요!"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우리 집 로봇청소기는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가진 초인공지능은 이미 탄생한 것 같다. 저 녀석은 청소만 하려고 우리 집에 온 게 아니다. 교묘히 깐죽거리며 날 갖고 놀 줄 안다. 매일 반복해서 청소하는 집이면서도 모르는척하며 마루만 대충 청소하고 충전기로 가버리는 날도 있다. 완벽하게 피하던 현관턱이건만 수틀리는 날은 보란 듯이 돌진해 떨어져 버린다. 뭐에 화가 났는지 휴대폰 충전기를 있는 대로 잘근잘근 씹어버려 피복을 다 벗겨놓는 날도 있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을때 청소를 시켜놓으면 완벽하게 마치고 제집으로 돌아가 얌전히 충전을 하고 있는 요망한 녀석... 청소 한번 시키려면 화장실 문도 다 닫아두고 충전선을 비롯해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두 치워드려야 하는 상전이다... 처음엔 그저 고맙기만 하더만...

* 청소기를 향해 말도 안되는 성질을 늘어놓고 있는 내가 한심하면서도, 내 호통이 끝나자 집으로 유유히 가버린 청소기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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