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여덟 번째 시시콜콜

<사회 편>

by 늘봄유정

지난밤 SBS에서는 신선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SBS 스페셜>이라는 기존 프로그램 내에서 시도한 약간 파일럿 프로 느낌의... 아마도 반응이 좋으면 신설되지 않을까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세명의 '장'씨 MC는 각자의 지인에게 특정 사건을 이야기해준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만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제목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뒷이야기, 상황, 사연을 섞어가며 전해준다. 처음엔 세명의 이야기꾼에게 왔다 갔다 하는 화면 때문에 "뭐 구성이 저래?"그러다가 이내 적응이 되었고 급기야는 개성 있는 세명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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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이야기는 <지강헌 사건>이라 불리는 1988년의 인질극을 다뤘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던 미결수들 중 일부가 호송 도중 탈주했고 그중 지강헌 일행이 가정집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고 최후를 맞이했던 사건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깊이 기억되는 이 사건의 속 깊은 이야기는, 지강헌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소시민의 억울함과 슬픔을 전하고 있다.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재판부에서 인정한 횡령금 76억에 대해 징역 7년의 처벌을 받고 3년 후 석방되었으나 지강헌은 556만 원 정도의 절도로 17년형을 선고받았던 것. 법이라는 것이 가진 자에게는 관대하고 없는 자에게는 엄하다고 느꼈을 재소자들의 절망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다섯 집을 돌아다니며 인질극을 벌였어도 한 명의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질범들에게 연민을 느꼈던 인질들은 최후 생존자인 강영일의 감형을 위해 탄원서까지 제출했으니...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불리는 인질범 동화, 동조현상과는 또 다른 차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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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말미 출연진들은, 범죄를 미화하거나 지강헌이 한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며, 사건을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의미를 찾는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되지 않기를,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로만 남기를 희망했다. 죄가 있으면 죗값을 받고 죄가 없으면 받을 일 없는 심플하고 정직한 세상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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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한 정직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오히려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닐까?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오직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갑툭튀 한 것일까? 자본이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돈 앞에서 억울한 사람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 전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고 회자된 시점부터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자본주의 이전과 이후,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라는 정도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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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향은 존재해야 한다. 자유롭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 일한 만큼 벌고 죄지은만큼 벌 받는 세상 말이다. 태고적부터 인간은 남들보다 더 가지려 했고 가진 자가 더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없는 자들은 그들에게 빌붙으려 했으니, 아무리 노력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절망적이지 않을까? 적어도 농경사회 이전에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원시 공산제'사회에서는 그러지 않았을까? 지속적으로 이상향을 추구해야 그나마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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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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