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편>
학부모 학교참여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즈음...
학부모란 무엇인지, 학부모가 학교에 참여를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까지 참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막내의 고등학교 졸업 2년 반을 앞둔 시점에... 어영부영 대충 2년 반만 때우면 학부모에서도 졸업이건만 뒤늦게 사서 하는 고민이다.
난 어떤 학부모였을까?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때부터 각종 학교 행사에 참여하였고 반대표와 학부모회 임원도 여러 해 해왔다. 아이가 학급 회장이 되는 경우 등 떠밀리듯 하게 된 일들이었지만 소홀히 여기거나 대충 한적은 없다. 김영란법이 없던 시절에는 소풍 때 선생님들 도시락을 챙기는 무리에도 섞여있었고, 순서를 정해 초등 저학년 교실을 청소해주는 것이 학부모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지나왔다. 남들 하는 만큼 남들 하는 방식으로 아무런 문제의식도, 거부감도 없이 그렇게 십수 년을 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극적으로 보였을지 모르나 스스로는 소극적이었다고 생각되는, 모순덩어리 학부모였던 셈이다.
최근 보았던 교육정책토론회 영상에서 본 한 학부모의 학교와 교육청을 향한 발언은 꽤 공격적이었다.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주장하지만 실제 학부모는 늘 소외된다는 것, 무지한 학부모들을 위한 꾸준하고 심화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며 학부모회의 예산집행과 회계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등이 요지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교육의 주체로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논란의 소지가 많아진다는 이유로 학부모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불만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말하지는 못한다는 이유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학부모회의 독립성만 보장된다면 학부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 참여해줄 것인가. 내 생각엔 아니올시다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학교에 반영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앞에 나서고 싶어 하지는 않으며 책임지는 것도 싫어한다. 누군가 대신 총대를 메 준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자신이 되는 것은 싫어한다. 아이가 임원을 했으니 어쩔 수없이 학교일을 돕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 한다. 교육이라고? 입시나 성교육처럼 내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교육이라면 모를까 학교 운영과 예결산 등의 문제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게다가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한 상황.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 '학부모 지원 전문가'라는 이들이다. 교육공무직인 이들은 학부모들의 학교참여를 돕기 위해 연수를 준비하고 총회부터 학부모회 운영 전반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누구보다 현장에서 학부모들을 많이 만나보았으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몸소 체험한 이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토론회의 발언자는 학부모 지원 전문가의 비전문성을 언급하며 재교육과 순환보직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 직군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학부모 학교 참여 저조의 원인을 학부모가 아닌 외부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는지...
도대체 학부모 학교참여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학부모의 학교 참여 저조의 원인은 학부모에게 있다. >
* 어떤 사안에든 강경파와 온건파가 나뉘기 마련이다. 급진적, 극단적, 저돌적, 직접적인 행동만이 변화와 발전을 보장한다는 측과, 오랜 시간에 걸친 대화와 타협, 점진적인 해결책 마련 등이 조직과 사회에 더 도움이 된다는 측의 대립.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둘 사이의 조화가 필요해 보이건만... 늘 중간은 없다는 게 문제다.
* 학교 문턱을 넘는 것이 어려우니 학부모가 편하게 학교에 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게 평생교육이나 동아리인데, 이 역시 머릿수 채우기 급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