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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01. 2020

마땅한 폐업

2018년 9월 개업을 했다. 

2017년 초부터 협회 소속 코치로 정신없이 강의를 다니다가 개인 수업 몇 개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실 마련에 애를 먹었다. 한 군데 터를 잡는다면 기존의 수업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신규반을 받는데 더없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전의 대치동이라고 불리는 건물에 8평 남짓한 작은 교습소를 오픈했다. 각 층마다 국영수 학원이 들어서 있고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건물이니 오가며 소문이 나겠구나 기대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이름을 지었다. '올댓 디베이트'. 

김연아의 올댓 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남편의 제안이었다. 익숙한 이름이라 나중에 프랜차이즈를 만들기에도 좋은 이름이라고 했다. 사업자 등록을 했다. 집기를 들이고 집에 있는 책을 옮겼다. 이웃 학원과 건물 관리실에 집에서 직접 만든 시루떡을 돌렸다. 가족들과 지인들이 개업을 축하하며 금일봉에 선물, 화분 등을 보내왔다. 그럴듯한 시작이었다. 


처음 몇 달의 부진은 예상한 바였다. 기존의 학생들과 함께할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만의 사무실이 생겼다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사무실 한 편의 통유리로는 옹기종기 모인 상가건물의 지붕이 보이고 적당한 높이의 야산도 있어서 풍경이 좋았다. 지인들과 둘러앉아 커피 마시기에도 제격인 공간이었다. 


존재감 없는 신생 학원에게는 홍보가 필요했다. 시에서 관리하는 장소에 현수막을 달았고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렸다. 지인들과 함께 인근 초등학교 3월 총회날 볼펜과 전단지를 돌렸다. 수백 장을 돌렸는데 문의전화는 한통 왔다. 그것도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한글을 가르쳐달라는... 초등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디베이트'라는 토론의 한 형태를 가르치는 곳이라고 안내되어있는 전단지는 읽지도 않은 게 분명했다. 오로지 'OO디베이트 국어 교습소'라는 제목에서 '국어'만 눈에 뜨였던 거였다. 

신학기 적응기간이라 주요 과목이 아닌 토론에는 관심 가질 여력이 없겠거니 생각하며 몇 달을 기다렸다. 6월경 4명씩 두 클래스가 생겼고 11월경 또 한 클래스가 생겼다. 이렇게 조금씩 늘어나면 좋겠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올해 1월, 지역 맘 카페에 자영업자 홍보 주간이 있어 제대로 홍보를 했고 수십 건의 문의가 들어왔다. 2년 전 가르쳤던 아이의 엄마가 동생 친구들을 팀으로 구성해 새로운 반도 꾸려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빠지나 보다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휴원 했다.

10명 이상 집합 금지에도 걸리지 않는 교습소였지만 걱정을 떨구지 못했다. 2시간 내내 나든, 학생들이든 말을 해야 하는 수업이다 보니 마스크를 썼어도 불안했다. 일단 휴원을 하면 상황이 진정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석 달이나 됐다. 6월 초부터 수업을 재개했다. 수업 내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모두 잘 적응했다. 그렇게 두 달간 수업을 하고 탄력이 붙고 있었는데, 다시 확산세... 게다가 우리 동네가 코로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말았으니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님들의 우려도 커졌다. 그렇게 2주를 쉬다 보니 재계약 시점이 돌아왔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바닥난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처럼 나 역시 반복되는 휴원으로 타격이 컸다. 수입은 없는데 월세와 관리비는 내야 했다. 임대주에게 사정을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온 답은, "나 역시 힘들다."였다. 섭섭하거나 야속하지 않았다. 지금 안 힘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모두 저마다의 사정은 있는 법이니. 

8개월 중 넉 달간 휴원을 한 현 상황에 비추어 앞으로를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내년까지 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내린 결론이 "지금이라도 접자!"였다. 


다행인지,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바로 생겨 일주일 만에 사무실을 내어주게 됐고 서둘러 짐을 정리 중이다. 천년만년 이 자리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짐을 너무 많이 들여놨다. 다음 세입자에게 헐값에 넘길 기물들을 제외하고는 주말을 이용해 집으로 옮겼다. 친정식구와 남편, 두 아들들을 동원해 짐을 옮기는데 그렇게 송구하고 민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낙오나 패배가 아닌 '일단 후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 없다. 코로나 때문이라는 꽤 괜찮은 핑계가 생겼을 뿐이라는 자괴감도 든다. 곱씹어보면 코로나는 폐업의 이유가 아니었다. 


절박했어야 했다. 돈 많은 아줌마가 자아성취용으로 차려놓은 카페쯤으로 생각해 슬슬 나갔다 들어오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사무실을 지켰어야 했다. 강의가 있거나 강의 준비를 할 때만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눈뜨면 가야 하는 곳으로 여겼어야 했다는 말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이라도 읽으며 늘 불을 밝혀두어야 했다. 월세와 관리비 이상으로 열심히 벌어 아이들 학원비도 마련하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남편에게 힘도 실어주어야 했다.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 차렸으니 홍보에도 더 열을 올리고 없는 상담도 만들어가며 모객에 신경 써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적당히 했어야 했다. 배고프다는 학생들이 신경 쓰여 음료수에 간식까지 잔뜩 준비해 배불리 먹일 필요가 있었을까. 춥다는 학생들이 신경 쓰인다고 온풍기를 더 장만할 필요가 있었을까. 당연히 해야 할 공부를 했을 뿐인데 잘했다고 치킨 사주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문상을 선물하는 오지랖이 필요했을까. 무분별한 지출에 정당한 이유를 붙여가며 안일하게 운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는 마음을 버렸어야 했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에 희열을 느끼지만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포기했어야 했다. 돈은 본인이 벌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는 남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더불어, 원장, 대표, 사장의 감투를 벗어야 했다. 내 사업은 루즈하게 운영하지만 남의 일이라면 열과 성을 다하는 '나' 아니던가. 진두지휘하며 총괄하는 것보다는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더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에 인정해야 했다. 


오늘의 폐업은 결코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나에게서 비롯된 수많은 이유들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폐업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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