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는 자신 있다던 그였다. 몸뚱이가 건강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마저 일그러진 얼굴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볼만해요~"라는 나의 감상평만 믿고 만원을 결제해 <살아있다>를 봤다는 지인은 내게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평점이 낮아 여태 안 보고 있다가 내 말만 믿고 봤거늘 어떻게 이렇게 뻔하고 갑작스러운 결말을 보여주냐는 것이었다. 지인의 말대로,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소재가 독특하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심오한 영화도 아니고 감독이 곳곳에 숨겨놓은 디테일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영화도 아니다. 뻔한 재난영화다.
재난영화라면 나옴직한 뉴스 화면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아 숨죽이게 되는 장면에서는 예상대로 좀비가 튀어나왔다. 예상했지만 화들짝 놀란다. 주인공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등장했고 뒤이어 그 조력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주인공이 나서서 도와줬다. 어딘가 모르게 믿음이 안 가던 사람은 짐작대로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고 결국 악인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궁지에 내몰린 주인공과 조력자는 탈출을 감행하게 되고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기어이, 결국 살아나는 뻔한 이야기.
재미도 감동도 교훈도 없는 뻔한 이야기지만 현실을 담은 영화를 통해 영화 같은 현실을 체감하는 중이다.
요 며칠 뉴스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속속 등장하고 '저렇게 모여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하고 걱정하던 곳에서는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악인이 등장하며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불신과 비난으로 가득한 현실 한편에서는 신뢰와 연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부에서 밀려드는 온갖 시련과 내적인 혼란을 겪으면서도 이를 악물며 버텨야 한다. 잘 버틸 수 있도록 서로에게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영화 속 유아인과 박신혜 모두 각각 삶을 끝내려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지만 결국은 상대 덕분에 살아남는 것처럼 말이다. 호박이 5,900원이 되면 호박 대신 다른 것을 먹으면 된다. 비싼 호박을 먹지 않아도 생존에는 지장이 없다. 잠시 휩쓸고 가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더한 삶의 고난과 역경이 속속 등장하겠지만 모두 짐작했던 바다. 삶이라면 응당 고난과 시련이 있어야 제맛이다. 남편이 지쳐서 멈췄다면 쉴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그러다 다시 서로를 북돋아 함께 가면 된다. 별거 있어 보이지만 인생도 별거 없다. 뻔한 영화만큼이나 인생도 뻔하다. 그러니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우리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