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Aug 19. 2020

살아있다...

애호박이 5,990원이다. 파 한 단도 마찬가지다. 긴 장마가 만들어낸 살인적인 물가에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 결제를 포기했다. 대신 냉장고 구석구석 먹을만한 것을 찾아 계획을 세우다 보니, 영화 <살아있다>의 유아인이 남은 식량을 7일 치로 나누던 장면이 생각난다. 가고 싶은 곳을 맘 편히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영화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좀비 대신, 검체 전까지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한 고립이라는 것. 


코로나 2차 대유행에 대한 염려나, 확산에 일조해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분노를 느낄 여력이 없다. 남편의 몸에 이상신호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평소와 다른 증상들을 느끼던 남편은 결국 연휴 마지막 날 저녁, 응급실행을 했다. 왼쪽 눈이 감기지 않고 마시던 물이 입 밖으로 주르르 흘러내리고 마는, 안면마비가 온 것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각종 검사를 마치고 약을 받아 오니 새벽 2시 반. 다음날인 어제부터 스테로이드와 위장약을 시간 맞춰 챙겨 먹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아내의 잔소리가 효력을 발휘한 것도 어제부터였다. 당장 회사 휴가를 낼 것, 한의원에 바로 가서 침을 맞을 것, 주말에 짬을 내어하던 사이드잡을 그만둘 것, 새벽마다 틈틈이 하던 달리기도 멈출 것...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의 핵심 주장은 하나였다.

"잠시도 쉬어서는 안 되고 무엇인가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건강에 대한 맹신과 아내의 잔소리를 거역한 고집이  불러온 참사 앞에서 겸손해진 것도 잠시, 쉬는 김에 차량 점검을 다녀오겠다는 걸 또 뜯어말렸다.

못 말리는 사람이지만 말려야 했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17323일.

2020년 8월 19일까지 남편이 생존한 날 수다. 부모님 그늘 아래에서 생존했던 날을 제외하면 7474일 동안 스스로 생존해왔다. 아내와 아들 둘의 생존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오늘의 그를 마비시킨 것이리라. 

건강에는 자신 있다던 그였다. 몸뚱이가 건강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마저 일그러진 얼굴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볼만해요~"라는 나의 감상평만 믿고 만원을 결제해 <살아있다>를 봤다는 지인은 내게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평점이 낮아 여태 안 보고 있다가 내 말만 믿고 봤거늘 어떻게 이렇게 뻔하고 갑작스러운 결말을 보여주냐는 것이었다. 지인의 말대로,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소재가 독특하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심오한 영화도 아니고 감독이 곳곳에 숨겨놓은 디테일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영화도 아니다. 뻔한 재난영화다.


재난영화라면 나옴직한 뉴스 화면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아 숨죽이게 되는 장면에서는 예상대로 좀비가 튀어나왔다. 예상했지만 화들짝 놀란다. 주인공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등장했고 뒤이어 그 조력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주인공이 나서서 도와줬다. 어딘가 모르게 믿음이 안 가던 사람은 짐작대로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고 결국 악인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궁지에 내몰린 주인공과 조력자는 탈출을 감행하게 되고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기어이, 결국 살아나는 뻔한 이야기.


재미도 감동도 교훈도 없는 뻔한 이야기지만 현실을 담은 영화를 통해 영화 같은 현실을 체감하는 중이다.

요 며칠 뉴스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속속 등장하고 '저렇게 모여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하고 걱정하던 곳에서는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악인이 등장하며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불신과 비난으로 가득한 현실 한편에서는 신뢰와 연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부에서 밀려드는 온갖 시련과 내적인 혼란을 겪으면서도 이를 악물며 버텨야 한다. 잘 버틸 수 있도록 서로에게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영화 속 유아인과 박신혜 모두 각각 삶을 끝내려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지만 결국은 상대 덕분에 살아남는 것처럼 말이다. 호박이 5,900원이 되면 호박 대신 다른 것을 먹으면 된다. 비싼 호박을 먹지 않아도 생존에는 지장이 없다. 잠시 휩쓸고 가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더한 삶의 고난과 역경이 속속 등장하겠지만 모두 짐작했던 바다. 삶이라면 응당 고난과 시련이 있어야 제맛이다. 남편이 지쳐서 멈췄다면 쉴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그러다 다시 서로를 북돋아 함께 가면 된다. 별거 있어 보이지만 인생도 별거 없다. 뻔한 영화만큼이나 인생도 뻔하다. 그러니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우리는, 

살아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유 없이 좋을 때 사랑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