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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05. 2020

당근으로 부자되기

당근!

경쾌한 알림음에 후다닥 휴대폰을 집어 든다.

"당근 원합니다~"

판매중으로 올려놓은 물건에 '낯선 이'가 관심을 갖는다. 물건값이 맘에 들었는지 단번에 시간정하고 입금을 한다. 서로 비대면거래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져 집 앞에 물건을 내놓으면 거래 완료!

7월 초,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갖고 놀던 비비탄 총을 시작으로 9월 초 현재까지 당근을 통해 판매한 물품이 총 79개, 금액은 1,276,000원이다.


집안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분리수거함에 던지고 말아 버렸을 물건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닦아보았다. 그랬더니 누군가에게는 쓸만하고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도 한번 팔아볼까?' 하고 시작한 당근 놀이는 쌓이는 현금과 함께 중독성 강한 게임이 되고 말았다.


다이어트해보겠다고 샀다가 묵혀둔 나이키 모래주머니 - 10,000원

친정 엄마가 결혼할 때 챙겨주었던, 포장 그대로 사용도 안 한 20년 묵은 일본식 술잔, 술병 세트 - 5,000원

두어 번인가 사용한 그늘막 텐트 - 9,000원

떡과 육포 포장한다고 잔뜩 사들였던 각종 포장 리본 한 보따리 - 16,000원

이케아 철제 냅킨꽂이 - 2,000원

이제는 작아져서 입지 못하는, 두어 번 입었던 원피스 - 10,000원

더 이상 하지 않아 입을 일 없는 요가복 상의 5벌과 하의 2벌 - 17,000원

작은아이 중학교 다닐 때 학부모회 행사에서 받았던 한국도자기 접시세트 - 18,000원

우리 식구 모두 영어 공부해보자며 남편이 거금 주고 질렀으나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은 뇌새김 기계 - 230,000원

한때 남편의 로망이었지만 현관에서 썩어가던 자전거  - 200,000원


이렇게 집안 구석구석 잠자고 있던 물건들을 끄집어냈다. '언젠가 쓰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만 간직했던 물건들은 지금 당장 쓰겠다는 이들에게 입양 보내졌다.


아파트 탑층이라 서비스 공간으로 주어진 다락방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보물창고였다. 쓰지는 않지만 남 주기도 아깝고 절대 버리지는 못할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선물 받았지만 절대 사용할 일 없어 보이던 보이차 다기세트 - 50,000원

벤츠 영업사원이던 남편이 고객을 위해 장만했었을 벤츠 골프 항공백 - 30,000원

벤츠 여행가방 - 10,000원

치킨집 할 때 사용했던 벽걸이 선풍기 2대 - 6,000원

치킨집 할 때 사용했던 온풍기 - 20,000원

카페 하다 폐업한 이가 주었던 휘핑기 2개 - 20,000원

각종 떡 도구 - 12,000원

소형 선풍기 - 2,000원

양은 사각 쟁반 - 12,000원


무료나눔한 품목도 꽤 있고 20여만 원에 판매한 굵직한 물건도 더러 있다. 천 원 이천 원짜리가 대부분이며 이렇게 저렇게 모이다 보니 만들어진 1,276,000원이다. 이 돈은 매달 적자인 가계부를 메우는데 쓰고 싶지 않았다. 난, 명품백이나 액세서리로 탕진하는, 내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주부는 아니다. 아니, 내 살림었으니 나를 위해 써도 좋을 텐데 그럴 주변머리는 없는 주부라는 표현이 더 맞다. 대신 15년 된 낡은 아파트 개보수에 쓰기로 했다. 평당 백만 원씩 써야 하는 리모델링을 할 여력은 안되니 급하다고 생각하는 곳, 새시 실리콘 방수공사와 LED 등 교체로 결정!


계속되는 비 때문에 실리콘 공사는 아직이고 일단 각 방과 거실, 주방, 식탁등 교체를 마쳤다. 캄캄한 굴 같던 집안이 환해졌다. 집에서 잠자던 천 원 이천 원짜리 물건들의 위력이 실로 대단함을 느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처분해 받은 돈이니 번 것은 번 것이나, 솔직히 말해 그 열 배의 돈을 써놓고 겨우 120만 원 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실컷 쓰고 되판 물건도 있지만 개중에는 사놓고 몇 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도 꽤 되니 말이다.

팔려는 사람은 샀던 값을 생각해 비싸게 팔고 싶어 하지만 사려는 사람은 반대다. 남이 쓰던 물건이니 최대한 싼값에, 헐값에 인수받고 싶어 한다. 그 둘의 소리 없는 전쟁에서는 느긋한 사람이 승자다.

'당신 아니어도 살 사람 있소. 이 가격에 안 살 테면 가보시오~'라고 하는 판매자 승!

'비슷한 물건은 또 나오겠죠. 더 깎아주지 않는다면 살 의향 없습니다~'라고 하는 구매자 승!

마음 급한 판매자였던 나는 늘 패자였다. 원래 받고자 했던 금액에서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고. 그러다 헐값에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래 놓고는 물건 판 돈을 세고 또 세며 좋아라 했다.

남들은 백만 원을 투자해 천만 원을 버는 재테크를 하는 동안 나는 천만 원을 써놓고는 백만 원 회수됐다며 좋아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무턱대고 사놓고사용하지 않은 죄, 꼭 필요한지 수백 번 고민하지 않은 죄에 대한 벌을 단단히 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용을 다한 물건을 처분했더니 묵은 때 벗겨낸 듯 집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래된 전등을 LED로 교체했을 뿐인데 신수가 훤하다. 식탁등 하나쯤은 사치스럽게 돈 들여 장만했다. 방수공사까지 마무리한다면 비가 아무리 와도 베란다에 물이 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멍 때리며 허공을 응시하기만 하면 아들이 꼭 이렇게 묻는다.

"왜? 뭐 또 팔게? 뭔데?"

아닌 게 아니라, 매의 눈으로 이곳저곳 뭐 팔 거 없나 두리번거리는 요즘이다. 사람 빼고는 다 팔 심산이다.


산술적으로는 손해가 맞지만, 어쨌든 비웠더니 맘이 가벼워지고 동시에 부자가 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먹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사들이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됐으니 이러다가 진짜...

부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판매할 때마다 내역을 써보았다. 앞으로도 리스트는 쭉...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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