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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2. 2020

여든다섯 번째 시시콜콜

누구의 책임인가

연휴 첫날, 아침 일찍 전을 다 부쳐놓고 송편 빚을 준비를 하던 우리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교내 확진자 발생. 교직원과 학생들은 모두 자택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달 반 만에 다시 시작된 악몽이었다. 그것도 명절 첫날.


밀접 접촉자들을 대상으로 검사가 진행됐다. 명절 당일 정오쯤 확인된 바에 의하면 같은 학교 학생 3명과 이웃 학교 2명의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교내 감염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오늘 1학년 전체에 대한 검사가 진행됐다. 이웃학교는 한 달 반 동안 두 번이나 전체 검사를 하는 상황이다.

검사 계획을 알리는 학교와 담임선생님의 안내에 왈칵 눈물이 났다. 가족들은 당황했고 "엄마, 그거 오버야~"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어제 오후 내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관련 기사를 반복해서 보고 휴일에도 안내사항을 전달하는 선생님의 톡을 확인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온 식구가 집안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관련기사의 댓글 중, 한 달 반 만에 같은 학교에서 또다시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은 그 학교에도 문제가 있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애들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똑같은 사태가 반복되느냐는 것이었다. 턱스크를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주말에도 가능한 외출을 삼가도록 생활 관리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아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부모의 책임이다, 사태의 심각성에 무신경한 고등학생들이 문제다, 마스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다,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하는 방역당국의 문제다, 이 정부가 문제다... 


학교가 방역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를 안다면 함부로 욕을 할 수 없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은 번갈아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가진단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이상증세는 없는지를 수시로 체크하고 등교 시 발열체크도 그들의 몫이다. 그 와중에 복장과 용모에 대한 교육도 챙겨야 하며 학습 공백과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조금의 틈이라도 발견되면 부모들의 원성이 이어진다. 


아이들이 겪는 고충을 안다면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다. 

등교하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아크릴 칸막이 안에서 수업을 듣는다. 밥도 혼자 먹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것도 금지되거나 하더라도 편치 않다. 학원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고 가더라도 조심스럽고 눈치 보인다. 미성년자 출입이 금지되어 노래방과 피시방에 못 간지도 오래고 나가봐야 딱히 갈 곳도 없다. 원격수업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한다. 친구들과는 톡이나 게임으로만 만날 수 있다.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 부모 눈에는 빈둥대는 것으로 보이니 잔소리가 이어진다.


부모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등교를 하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많은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지만 종일 늘어져 있는 꼴은 보기 힘들다. 실시간 수업 시간을 확인해 시간 맞춰 식사를 주어야 한다. 원격수업을 잘 따라가는지, 제출할 과제는 잘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하지만 그러다가는 아이와 충돌하기 십상이다. 직장인 부모의 경우 아이를 관리 감독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분명 깨우고 나갔는데 자가검진을 안 했다, 연락이 안 된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는다. 끼니를 준비해두기는 했지만 스스로 잘 챙겨 먹을지 걱정이다. 학원을 보내자니 감염이 걱정되고 집에 데리고 있자니 성적 하락이 우려된다. 자기 주도 학습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지만 소수 몇몇 아이의 얘기이지 우리 아이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방역당국과 정부도 미칠 노릇이겠지.

손 씻기, 마스크 쓰기, 거리두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해도 개개인을 쫓아다니며 관리할 수는 없다. 고향방문을 자제하라고 하니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차단하기도 힘들다. 줄어드는가 싶다가 다시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확진자수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한다. 

완화된 조치를 취하면 안일하다고 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면 독재, 전체주의라고 한다. 자유를 허락하면 방종으로 확대되고 제한하면 기본권 침해라며 들고일어난다. 

'전교생 검사'라는 조치에 안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접촉 1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너무한 거 아니냐며 과잉 대응을 탓하기도 한다. 


코로나 19는 멀게만 느껴졌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바짝 끌어당겼다는 긍정적 효과를, 본의 아니게 끌어냈다. 반면 사회 곳곳, 집단 간, 개개인간에 숨어있던 모든 갈등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폭발시키는 역할도 했다. 그것마저 순기능으로 볼 수 있긴 하겠다. 끙끙 앓던 문제들을 표면화해 인지시키고 결국 해결책을 모색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해결책 모색 이전에 책임을 추궁하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 아닐까. 도대체 이 문제의 발단은 누구인가. 누구에게 이 원망의 화살을 쏘아야 하는가. 울분을 토해낼 대상은 누구인가. 


누가 어떻게 왜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보았는지...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최선인지...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일부 학교의 코로나 재확산은 학교의 책임이다.>

< 코로나 19 확산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재앙에 맞서 투쟁을 계속하던 모든 사람을 조금씩 무너뜨리던 탈진 현상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외부 사건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격정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방치하는 부주의에 있었다.  
                                                                                                                                           - 페스트
미생물은 자연적입니다. 그 이외의 것, 건강, 온전함, 무결점 등을 원하신다면, 그건 의지에 달려 있어요.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페스트 환자로 있기를 원치 않는 것은 더 피곤한 일입니다.                                                                                       -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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